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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트레커의 꿈

by 嘉 山 2021. 11. 17.

트레커의 꿈 / 황정혜
 
추억이란 열차에 몸을 싣고 희미한 풍경을 바라본다. 아득한 오랜 친구의 이름처럼 다가와 일순간 지나가는 수많은 파노라마.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향해 자유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간절히 원하던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계획했다. 옥룡설산과 안나푸르나를 함께했던 여행사와 날짜를 맞출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남편과 카투만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 도착해 네팔 현지 가이드와 만나 앞으로 진행될 1415일의 설명을 들었다. 천천히 고소에 적응하여 쿰부 히말라야 전망대인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여정이다. 이 코스에서는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등 수많은 높고 아름다운 봉우리를 볼 수 있다.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까지 볼거리가 많다고 했다
 
루크라행 경비행기를 타려고 도착한 공항은 산악인들과 트레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양쪽 공항의 기상 상태가 좋아야 비행이 가능한데 안개 때문에 몇 시간째 운항이 중단되었다. 공항 벽에는 쿰부 히말라야 산군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사진 아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기다림이라는 고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헬기로 빨리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와 가격을 흥정하는 이도 있었다. 고산지대의 기상 상태 특성 상 연발은 다반사요. 결항도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사고 이야기도 하면서 헬기는 더 위험하다고 했다. 운 좋게 오후에는 경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관문인 루크라 공항은 해발 2840m 깊은 계곡에 있었다. 활주로의 경사가 심하고 벼랑 끝에 위치해 착륙할 때는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중 하나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작은 공항의 철조망 밖에서는 포터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키도 작고 왜소했다. 하지만 단련된 체력은 대단하다고 했다. 우리와 함께 할 포터를 만나 짐을 건넸다. 멜빵은 이마에 걸고 걸음걸이는 빨랐다. 출발할 때 빼고는 거의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공항보다 고도를 낮춰 2610m 팍딩에 있는 롯지에서 숙박하기로 되었다. 루크라 마을의 중심거리를 지나 완만한 산길을 따라 도착했다. 롯지는 현지인들의 집이자 일터다. 여행자들에게는 민박 겸 식당인데 목조 건물로 아담하게 지어졌다. 일정을 잘 치뤄낼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과 함께 밤새도록 포효하는 계곡의 물소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설렘으로 잠 못 이루게 했다
 
다음 날은 남체바자르까지 3440m 고도에 적응하며 천천히 올라간다. 하루를 더 머물며 고소 적응 하려고 휴식한다. 뒤편 꽁데산에 오르자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쿰부 지역의 중심지로 세르파족 마을이다. 세계 각국의 등반대를 도와주는 노력의 대가로  부를 많이 쌓은 풍요로운 곳이다.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차 한 잔 마시며 히말라야 산군을 조망한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남체바자르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고 했다. 엄청나게 큰 야크 치즈, 장신구, 생필품 등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많았다. 다이나막스라는 고산병 약을 먹었는데도 속이 울렁거리고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고산증세가 벌써 나타났다.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포기할 수가 없었다. 특히 남편의 목표 달성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남체바자르를 떠나 오른쪽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곳곳에 마니차와 롱다가 있어 티벳불교 라마교 지역의 신앙심을 엿보게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마스떼 하며 두손을 모아 인사한다. "내 안의 신이 당신의 신께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의미로 인도와 네팔에서 통용되는 인사말이다. 트레킹 3일차부터 우리의 시선을 따라다니는 아마다블람은 세계 3대 미봉 중 하나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별명처럼 보석을 깎아 놓은 듯 아름다운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졌다. 설산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자외선이 강해서 썬글라스와 썬크림은 필수다. 머리는 고산병을 막으려면 항상 털모자를 눌러 쓰고 따뜻한 물을 계속 마셔야 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물값은 굉장히 비싸진다. 가이드 말로는 롯지에서 물을 팔아 카투만두에 건물을 몇 채씩 마련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깎아지른 거대한 수직 절벽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굉음을 내는 옥색 계곡 위로 어마어마하게 높은 길고도 무서운 출렁다리는 오색 깃발들을 달고 있었다. 귀신들의 장난을 막아 위험을 없애준다는 민속신앙이라 했다. 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며 야크와 물소의 교배종인 좃교라는 동물이 잔뜩 짐을 싣고 힘에 겨운 듯 벌어진 혓바닥에서 침이 흐른다. 정면에는 로체 봉우리가 흰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에베레스트는 지구의 가장 높은 곳에서 편서풍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오르는 내내 마칼루, 로체, 탐세루크 등 높은 설산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높은 언덕을 오르니 앞에 작은 마을이 보인다. 빙벽으로 된 설산들이 병풍처럼 막고 서 있다. 오른쪽으로 빙하가 시작되는 곳인 듯 얼음기둥들이 융기된 채 신비로운 푸른 빛을 내뿜고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였다. 그 얼음 기둥들은 계곡으로 숨겨져 이어지는데 어렴풋이 아이스펄이 보였다. 왼쪽에는 검은 색의 작은 산이 피라미드처럼 서 있는데 칼라파트라였다. 빙하가 녹아 떨어져 천둥치는 것처럼 들리는 큰 소리에 미성숙한 지구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해발 4400m가 넘으니 수목이 자라 지 못했다. 4000m 이상은 덩치도 크고 털도 풍성한 야크가 짐을 실어 나른다. 야크 똥은 뗄감으로도 유용하다. 척박한 곳에서 자란 가느다란 마른 풀은 야크가 먹는다. 해발 5100m가 모든 둥물의 생장 한계선이라고 했다. 중간중간 포기하고 내려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복병은 고산증이다. 유일한 치료법은 하산하는 것뿐이다. 내가 음식을 제대로 못 먹으니 남편도 혼자 먹지를 못 한다. 하지정맥류가 있는 다리는 자꾸 쥐가 내려 통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마지막 고락셉 롯지는 5140m에 위치했다. 다음 날 새벽, 걸어서 5550m 칼라파트라까지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남편만 올랐다. 하산길에 하늘이 열리며 고락셉에서 병풍처럼 둘러싸인 설산을 배경으로 찍은 내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가게에 걸었다. 그 시절을 다시 한 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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