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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카톡 방의 반란

by 嘉 山 2021. 4. 20.

카톡 방의 반란 / 황정혜

 

 

글쓰기가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방송대 입학 했다.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방송대 좋은 점 중 하나였다. 한 학기에 이틀 동안 하는 출석수업은 학우들을 만나는 설렘과 함께 방송 강의로만 뵙던 교수님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 기대가 컸다. 쉬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열강하시는 교수님과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우리말의 구조를 강의하시는 교수님은 조용한 성격에 어린이 같은 선한 모습이었다. 수업 끝내기 5분 전에는 좋은 말씀도 해주셨다." 우리들의 만남은 소중한 인연이다. 인생의 최종 목적은 겸손함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을 추구해야 남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으며 화도 나지 않는다. 가장 못난 사람은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며 자기 것으로 가득 채우면 배울 것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고 하신 말씀은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처음 만난 학우들과 점심을 함께 먹고 서로 밥값을 내기도 하며 화기애애 했다. 가장 젊은 사람으로 대표가 정해졌다.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총무는 방송대 컴퓨터학과를 졸업 하고 두 번째 학과의 도전 했다. 나처럼 막연하게 배우겠다고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춘문예 당선된 사람, 작품집 몇 권씩 낸 작가들도 많았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해도 마음만은 풋풋한 대학생이었다. 총무는 삐약이들의 카톡 방이라는 이름으로 학우들을 초대했다. 날마다 인사말이 오가고 학사 정보, 학습 정보가 공유되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카톡 방은 함께 손을 잡고 서로서로 이끌어주는 힘이 되었다.

 

 

방송대는 학우들이 함께할 수 있는 큰 행사가 많다, '전국 한마음 학술제 , 문학기행, 모꼬지, 학장배 가요제, 체육대회, 등불지 행사' 등 시간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대학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은 나는 재작년 봄 문학 기행을 함께 했다. 장소는 무위사, 사의재, 다산 초당에서 정약용을 기렸다. 그리고 영랑 생가도 들렀다. 김영랑의 시 속의 모란이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고 우리의 눈 앞에서 찬란한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우리 학년은 단합이 잘되어 다른 학년 학우들이 부러워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방송대도 4학년이 되면 학과대표와 총무, 학년대표와 총무, 분과마다 대표들이 정해져야 한다고 했다. 대표가 카톡 방에 "의향이 있으신 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등의 의견을 물었다.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대표는 몇 사람을 지목해서 카톡 방에 올렸다. 이때부터 카톡 방은 시끌시끌했다. 내가 봤을 때는 능력있는 학우들을 잘 뽑은 것 같았다. 대표가 무슨 글만 올리면 찍어 내렸다. 하는 것을 다 지켜보고 있다며 사사건건 토를 달았다. 카톡 방의 에너지를 받으며 공부하는 많은 학우가 힘들어했다. 나 또한 몹시 힘들었다. 조금만 이해하면 될 것을 에스엔에스(SNS) (사회관계망 서비스) 폭력이 이런 것이구나 처음 느꼈다. 카톡 방을 떠나는 학우들이 늘어났다.

 

 

주동자 격인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하냐고 대표 편을 들어서 물었다. 예전처럼 따스한 마음이 깃든 카톡 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적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은 대표의 비리를 다 쓰겠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직접 전화를 했다. 글쓰는 사람들이라 자존심이 강한데 왜 자기 이름을 올렸냐는 이유였다. 말하지 않아도 다 보였다. 나는 한 시간 넘게 전화로 고문을 당했다.

 

 

이유는 대표가 의논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 게 잘못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3년간 총무 일을 했던 학우가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많이 했단다. 대표는 의향을 묻지 않은 채 학년 부회장으로 좌천 시켰기 때문이다. 연약한 여성을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대표는 조금 더 편한 직책을 맡게 하려는 배려였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후 대표와 총무는 화해했다. 임원도 다시 선출했다. 대표를 왕따 시키려 했는데 총무와 화해하니 그 다음엔 총무 차례였다. 총무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단다. 더이상 카톡 방에서 버틸 힘이 없다면서 장문의 인사를 남기고 혼란을 피했다.

 

 

3월이 되면서 대표와 총무를 주측으로 온건파들의 카톡 방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이에 못마땅한 주동자들이 대표와 총무 사퇴해라 등등 갖은 비난 글을 카톡 방에 올렸다. 급기야 대표는 학우들에게 좋은 해결책을 물었다. "대표님! 마음속에 사랑을 품은 시인이잖아요. 그분들이 너무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도와달라고 하세요. 가끔은 큰 잘못이 없어도 미안하다고 해야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야 나중에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났을 때 웃을 수 있잖아요." 대표는 알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듣던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 할머니 말씀이었다. 마침 좋은 글을 발견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이훈 교수님이 올려 주신 김범준의 <꼰대>라는 글이었다. 그 글을 주동자들이 있는 카톡 방에 올렸다. 글의 효과였을까? 카톡방은 두 개로 나뉘어졌지만 조용히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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