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계치다 / 황정혜
나는 기계치다. 빠르게 발전하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내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잡기가 힘들다. 고장도 나기 전에 2년 정도가 지나면 새로운 기종을 사준다. 집과 가게만 오가니 필요하지 않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애들은 그 기능과 디자인에 감탄하며 호들갑이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뿌듯해하며 기능을 익히라고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각종 기계들은 사람들을 그만큼 편리하게 해 준다. 이런 세상에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가끔은 스마트폰이 족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전화벨 소리, 문자 알림, 카톡 소리 등은 나도 모르게 손길을 이끈다. 가끔 힘들 땐 스마트폰 없이 집을 나선다. 한없이 걷다가 바닷가에 다다른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서 있노라면 너울너울 밀려오는 잔물결은 내 마음을 향하고 철썩철썩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편안해진다. 누구에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심신을 정화하는 방법이다.
둘째 딸과 영상통화를 했다. 갈수록 발전하는 고화질 영상은 놀랍다. 선하나 사이로 대조되는 얼굴이 보인다. 항상 남을 의식하고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는 아이다. 자글자글 주름살 잡힌 내 얼굴 옆에 싱그럽고 온갖 앙증스러운 표정의 딸을 보고 순간 울컥했다. 큰딸에게 이 비애를 말했더니 "욕심도 많소. 그렇게 노력하는 애랑 비교해요." 위로는 못할망정 한 방 얻어 맞았다. 그다음 친정엄마와 통화했다. 85세 우리 엄마, 10원짜리 고스톱 치면서 "나 그림 공부한다." 하시며 깔깔깔 웃는다. "엄마는 갈수록 젊어지네." "우리 딸도 이쁘다." 하신다. 즐겁게 살려고 애쓰니 걱정 말란다. 엄마의 웃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셋째 딸이 "엄마 얼굴에 주름은 생겨도 나이 들수록 연륜과 지혜가 생겨 마음속의 주름은 활짝 펴질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젠 나이가 먹었나보다 말 한마디에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괜시리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정보화 시대 손아귀에 들어있는 작은기기는 손가락 터치 하나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필수품이 되었다. 들로 산으로 마음껏 뛰어놀던 유년 시절의 추억도 밥상머리에서 오가던 대화도 이젠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책 향기를 맡으며 책장 넘기는 소리, 사각사각 글씨 쓸 때 나는 경쾌한 소리마저 빼앗기고 있다. 전화번호도 굳이 외울 필요가 없어졌다. 최첨단 문명의 산물인 스마트폰이 외관상은 내 손안에 있지만 우리가 그 속에 갇혀 버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수시로 같이 사는 셋째 딸에게 부탁한다. 차표 좀 예매해 주면 안 될까? 치킨 좀 배달시켜 주면 안 될까? 글 좀 보내줘. 영화표 좀 예매해 줘. 무엇을 부탁해도 웃으면서 해 주는 딸이 고맙기만 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메일을 확인하고 기사와 좋은 글을 읽으며 하루를 설계한다. 하루빨리 기계치에서 벗어나 똑똑한 스마트폰과 친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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