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 황정혜
당신을 보았을 때 어쩌면 저렇게 웃지도 않고 고집스럽게 생겼을까 생각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로 사귀고 싶다는 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의실에서 함께 공부하며 열정적인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요. 하지만 내가 망설인것은 너무나 가난해서 야반도주했던 일, 어린 동생 등에 업고 서럽게 울던 엄마에게 나를 보고 살아 달라고 애원했던 일, 동생들은 절대로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늘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인사시키던 날 초가지붕을 파란 포장으로 씌워놓은 처마가 낮은 집과 아버님 무릎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네 명의 동생들을 보았습니다. 동생 둘을 잃어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얘기해 주었지요. 진실하고 용기 있는 행동에 당신의 아내가 되어 인생길 돕고 싶었습니다. 아픈 가슴 어루만지며 힘든 짐 나누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 속 당신의 모든 것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었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행복은 가족의 웃음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던 시절은 기쁨이었습니다. 눈썰매 한 번 더 타려고 땀 뻘뻘 흘리며 오르내리던 추억엔 아이들의 함박웃음이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의 환호는 큰 즐거움이었답니다.
결혼 후 떨어져 있던 적이 거의 없었네요. 당신보다 하루만 더 살아달라는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함께 잠자리에 들고 숨결 느끼며 일어날 때 참 좋았어요. 비어있는 옆자리가 허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부탁이 있어요. 아이들에게는 영원한 엄마이고 싶답니다. 주어도 또 주어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엄마의 마음 헤아려줬으면 합니다. 자식 노릇, 형 노릇 잘했듯이 우리 애들에게 내 몫까지 부탁합니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며 남편으로서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 고마웠어요. 충분히 차고 넘쳤으니 아쉬움으로 눈물 흘리지 말아요. 당신이 하늘을 바라볼 때는 내가 구름이 되어 방긋 웃는다고 생각해 주세요. 꽃을 보면 꽃이 되어 향기를 보내며 새를 보면 새가 되어서 지저귀는 거라고 외로움을 달래세요.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눈과 머리를 수술하고 심장까지 아파서 급하게 상경했는데 병실이 없어 안타까웠을 때 회한에 젖은 울음소리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신이 주역을 공부할 때 대산 선생님이 지어 주신 호 '가산(嘉山)'이 생각납니다. 일조가산록우암(日照嘉山鹿麀巖) , 햇살 비치는 바위에 사람들을 뛰놀게 하는 아름다운 산의 뜻을가진 호를 충분히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 당신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리 집안의 큰 산이었어요. 비록 가진 것은 적지만 마음만은 최고로 부자이기를 바랍니다.
당신과 함께 더 있지 못해 미안해요. 가끔은 당신이 하는말은 무조건 맞다는 아집을 버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아프게 말했던 것 용서해 주세요. 살다 보니 여의치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열정적인 당신을 만나 의미 있는 시간 열심히 살았습니다. 당신의 품에 안겨서 마지막 숨을 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 품은 늘 포근했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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