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을 꿈꾸는 사나이 / 황정혜
남편은 처음 만나자 10억을 모으는 게 꿈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 가난해서 야반도주한 아픈 기억 때문에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린 동생들은 절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각오도 했다.
일 무서운지 모르고 열심히 했다. 그 덕분에 시장 한쪽 조그만 가게를 장만할 수 있었다. 남편은 좋아했다. 더는 월세가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시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훌륭한 집은 아니었지만 주택을 세 채 샀다. 두 채는 목이 좋으니 나중에 합쳐서 그 땅에 상가를 짓겠다고 했다. 장성한 시동생들이 결혼할 때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집을 하나씩 주었으면 좋겠다고. 장남인 남편은 세 명에게 다 나눠 주었다. 남편이 건물 짓겠다고 한 땅은 둘째 시동생이 상가를 지어서 세를 내어 주고 있다.
동생들 뒷바라지가 끝나니 우리 아이들이 보였다. 한 해는 대학교를 세 명이 다니니 많이 힘들었다. 아이엠에프(IMF)가 오고 우리 애들이 고생한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딸들이 제 몫을 다하니 무거운 짐은 덜 수 있었다. 동생들, 자식들 다 키우고 나니 함부로 썼던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남편은 뇌, 심장, 눈 수술에 이어 관절염까지 많이 힘들어 했다.
어느 날 멀리 사는 시댁의 이종사촌 동서가 찾아왔다. 기획부동산에 다니는데 양산에 좋은 땅이 나왔단다. 나는 가까이도 많은데 그 먼 곳까지 투자할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앞으로 발전할 가치가 있는 땅이란다. 땅을 계약했다. 동서는 수시로 그 주위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으니 금방 가격이 오를 거라며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찍어 보내 주었다. 그 동서의 소개로 또 한 건 계약했다. 남편은 그 땅이 오르면 팔아서 작은 가게라도 짓고 싶다고 했다. 그 기다림은 즐거웠다.
일년이 지나고 등기가 왔다. 그 땅들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단다. 그 부동산 사장이 은행에 빚을 다 갚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처럼 지인들 소개로 다 믿고 그 땅을 계약한 사람은 57명이었다. 모두 고소장을 제출하기로 했다. 동서는 고소 안 할 수 없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너무 많은 돈이라 어쩔 수 없단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부동산을 사고 나면 희망에 부풀어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은 참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10억의 꿈은 멀기만 하다. 손님들이 가게에 오면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빌딩이 몇 개냐고 묻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사기만 하면 쓰레기 날리던 땅도 개발이 된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라는 팔자인가 봐요." 그래도 우리가 제일 잘한 일은 사람 노릇하고 산 것이라며 남편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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