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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설날 맞이 소회

by 嘉 山 2021. 4. 24.

설날 맞이 소회 / 황정혜

 

 

 

설은 다가오는데 코로나 19는 잦아들지 않는다. 연일 계속되는 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와 방송은 마음을 괴롭힌다. "모이면 위험하고 흩어지면 안전하다."는 말이 증명하듯 사람과 사람의 상호 격리가 사회 규범이 되었다. 우리 집도 30명이 넘게 모이는 설날 차례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나물 한 가지씩 해서 가장들만 모이자는 막내 시동생, 이번엔 모이지 말자는 조심스런 둘째 시동생, "형님 말씀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는 셋째 시동생의 말에 결정권은 장남의 몫이다. 동생들만 오라고 해서 차례를 지내자는 남편의 말에 난 반대했다. "다섯명이 넘을뿐더러 집집이 한 사람씩 오면 거리 두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동서들이 오지 않는다면 시동생들만 오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평상시엔 남편 말이라면 거의 들어준다. 차례 음식 준비하는 것보다 따로 먹거리를 장만하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남자들의 밥상을 빨리 차려낸다는 게 부담되었다. 남편은 몹시 못마땅한 듯 "너희 형수가 다 오지 마란다."고 전한다, 어쩜 그렇게 전달을 하는지 쯧쯧. 아빠랑 둘이서만 차례를 지내야하니 내일 아침 일찍 와야 된다며 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밤을 새서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었다. 차례상만 차리니 일이 절반으로 줄었다. 푸짐한 차례상을 바라보며 이렇게 음식을 차릴 거면 동생들을 오라고 하지 못내 아쉬워한다.

 

 

 

아들은 전화도 받지 않고 오리무중이다. 해는 중천을 항해가고 시계소리는 유난히 째깍거린다. 남편의 화난 눈빛과 한숨소리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완벽주의자인 아빠에게 사사건건 맘에 들지 않는 아들이다. 기다리다 지쳐 조상님께 술 한 잔 올리고 쓰디쓴 소주로 속을 달랜다. 적막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동생들을 못 오게 한 것을 후회했다.

 

 

 

늦잠을 잤다며 비누냄새를 풍기며 아들이 왔다. 무언의 대화 속에 눈빛으로 차례를 지낸다. "엄마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이제 오면 어떡하니?" 아빠의 눈엔 아들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빠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씀 드려라." 마음은 있어도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단다. 가족 카톡방에 차례상 사진을 올렸다. "조촐하지만 정성껏 가족들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형제들과 카톡 인사로 세배를 대신했다.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큰 설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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