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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할머니 사랑

by 嘉 山 2021. 4. 14.

 할머니 사랑 / 황정혜


할머니는  날마다 정화수 부뚜막에 올려놓고 가족의 건강과 무사안녕을 빌었다. 목욕재계하고 새벽 정기가 듬뿍 담긴 처음 길어 올린 물만 사용했다. 그 많은 식구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읊조리며 치성을 드리는 모습은 경건하고 엄숙했다. 부뚜막은 윤기가 자르르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이 무탈한 것은 할머니의 정성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열다섯 살에 시집와서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시동생들도 많았단다. 명절이 돌아오면 길쌈을 해서 옷감에 검정물을 들여 옷을 만들었다. 그 옷을 입고 줄줄이 서 있으면  얼마나 예쁘고 뿌듯하던지 그 말씀할 때마다 행복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전 재산을 다 팔아도 갚지 못할 빚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장남인 아버지는 열일곱 살이고 7남매를 남기고 떠나셨으니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입버릇처럼 "죽으면 썩어질 손 놀리면 뭐하냐?" "죽으면 원없이 잘 건데" 하시며 잠도 아까워했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아버지는 할머니를 도와 7형제를 다 가르치고 결혼도 시켰다. 그 시절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을 할머니는 정성껏 상을 차려 따뜻한 밥을 먹이고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고구마를 캐거나 보리를 베어도 이삭을 줍지 않았다. 까치밥처럼 나눔과 배려라는 것을 커 가면서 알았다. 할머니 손은 지문도 닳아지고 멍석처럼 거칠었다. 


온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날마다 정성을 쏟으시니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볼과 이마를 부비며 우리를 사랑스러워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고추장에 밥을 쓱쓱 비벼 김치 한 가닥씩 올려 세 그릇을 뚝딱비우는 모습에도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채소 농사를 지으니 함께 다듬는 시간이 많았다. 그럴 때면 교훈을 담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바른 심성으로 자랄 수 있도록 애썼다. 할머니와 자란 아이들은 뭐라도 달라야 한다면서 올곧게 성장하길 바랐다. 아버지는 가끔 젊은 혈기로 엄마와 다투기라도 하면 할머니 앞에 무릎 꿇고 잘못을 빌었다. 같이 눈시울을 적시며 다독거리던 그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장남을 많이 의지하고 사셨기에 아버지 또한 인자한 성품을 많이 닮았다. 


참아 내며 버텨 내야 할 무게가 많았던 할머니가 계신 집은 늘 따뜻했다.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고  말썽부리던 삼촌이 있었다. 꾸짖지 않고 늘 다독거렸다. 우리 남편과 아들은 서로 사랑하는 게 보인다. 하지만 욱하는 성격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내게 소원이 있다면 부자지간 알콩달콩 사는 것이다. 아직까지 풀지 못하는 이 숙제를 할머니가 계신다면 어떻게 했을까, 여쭤보고 싶다. 내 남편을 처음 보았을 때 고집스럽고 성격이 보통이 아니어서 마음고생이 많겠다며 걱정하셨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따뜻하게 속삭인다. "참아라 참고 또 참아라. 살다 보면 좋은 세월이 올 것이야." 


돌아가시고 나면 누구나 회한이 있다고 한다. 내게도 비겁하게 도망치고 싶은 기억이 하나 있다. 칠십 평생 굽은 허리에 호미 잡은 거친 손으로 밤마다 가갸 거겨 고교 손녀에게 글 배워서 자식들에게 편지 한 장 써보는 게 소원이셨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 토해 내지 못하고 보내 버린 시간을 난 끝내 덜어 드리지 못했다. 
글감을 들었을 때 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성품을 아는 사람들은 그분 같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큰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가족들도 모이면 할머니 이야기로 화기애애하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할머니처럼 가족들 가슴속에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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