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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아기의 외출

by 嘉 山 2021. 5. 13.

아기의 외출 /황 정 혜

내가 아기를 낳아 키울 때는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이 장남이었기

에 더 간절했다. 셋째는 분명히 아들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 딸이었다. 남편은 가난한

집에서 식구가 많으면 힘드니 불임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하기로 결정된 날 어머님은 꼭

두새벽에 미역국을 끓여서 병원으로 오셨다. 다음엔 반드시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현몽하

셨단다. "그러니 제발 수술은 하지 말아라. 우리 아들이 욕심이 많은데 네가 마음고생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한 명만 더 낳아 보자." 하시며 극구 반대하셨다.

넷째를 임신하고 태아의 성별을 알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4개월이 지나서 의사가 아들이

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유난히 다리가 길다는 말에 얼마나 가슴 뛰고 떨렸는지 모른다. 분

만 예정일을 일주일 넘기고 유도 분만으로 아기를 낳았다. 딱딱한 분만실의 침대에서 한기

를 느꼈다. 커튼 사이로 침묵이 흐른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

쳐 지나간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급박하다.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축하합니다. 아

들입니다." 양수를 많이 들이마셔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단다. 아기를 품에 안겨 주었다.

세상을 혼자서 다 가진 것처럼 황홀한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저 아들 낳았어

요. 이제 세상 걱정 다 끝이에요."라는 말을 마음껏 외치고 싶었다. 옆집 아기 엄마가 나랑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딸만 둘이 있었는데 "정은 엄마 저 아들 낳았어요." 했다며 지금도 들

먹거린다. 난 기억에 없는데 미안했다. 다행히 정은 엄마도 아들을 낳았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머리는 새삼스러우리만큼 신기했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 삐

죽거리는 입술과 옹알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이유 없

이 행복했다. 기저귀를 갈아 주려다 오줌 세례를 받아도 기뻤다. 기저귀를 눈처럼 하얗게 빨

아 빨랫줄에 널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환하게 맑아졌다. 걸음마 연습할 땐 두세 발

걷다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기를 수십 번 아이는 쉼 없는 노력으로 세상을 배워 가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가게 일은 바빴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수금을 다녔다. 주인들이 아이 손에 돈을 주니 미안해

서 그날은 차에 혼자 두고 일을 봤다. 잠깐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아이가 없어졌다. 먼저 파

출소에 신고하고 온 가족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시동생들이 중고등학생이라 친구들까지

합류해서 거리 곳곳을 뒤졌다. 그 소식을 듣고 아버님은 병상에서 급하게 내려오시다 떨어

져서 깁스를 하게 되었다. 아무리 달려도 발걸음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아이 이름을 부르며

무사히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늦은 밤까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주공 아파트에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니 경비실

에서 보고 신고했단다. 차에서 아이가 내려 아장아장 걷고 있어서 데려갔단다. 아이를 품에

꼭 껴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찾을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세상

은 혼자의 힘으로 절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한때는 세상 모든 고민

을 짊어진 것 같아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기쁨과 행복이었다. 아이들 덕분에 더 열정적으로

살았다. 할머니가 그랬듯이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며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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