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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고 진 감 래

by 嘉 山 2020. 11. 18.

고진감래 / 황정혜

 

내게 즐거운 일 하나는 산행 후 글을 쓰는 것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교감하며 벗들과 함께 한 시간은 펜 가는 대로 쓰다 보면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그러다 막연하게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딸에게 말했더니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원서 접수와 등록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무심결에 해본 말인데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다. 방송대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교재를 보고 기출문제를 풀어가면서 자기 주도형으로 공부한다. 평가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다학교 수업은 출석수업으로 하루 9시간 이틀 연속한다. 첫 출석수업시간에 만난 사람들은 큰 깨우침을 주었다. 19세부터 80세까지 직업도 다양했다. 교장선생님 정년을 하고 8개학과째 도전하는 사람,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입학한 작가들도 많았다. 신춘문예 당선 된 사람, 시집을 많이 낸 사람,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머니의 땀에 젖은 꾸깃꾸깃한 오천원을 손에 들고 이웃집 형님 따라서 객지생활 수십년 가슴 한 켠 켜켜이 묻어둔 상처를 치유하려고 온 사람도 있었다. 방송대 졸업하는 날 어머니 묘소에 학사모와 오천원권 펼쳐 드리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명문여고를 합격하고 가지 못해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다가 방송고를 졸업하고 방송대까지 왔단다. 진즉 이 길을 알았으면 원망만하고 살지는 않았을텐데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만 남는단다. 생각없이 온 나와는 많이 달랐다.

 

딱딱한 의자에 9시간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누구하나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교수님들 열정 또한 대단했다. 쉬는 시간도 아끼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고 애를 썼다. 입시 경쟁에 시달리던 가련한 수험생 때와는 전혀 다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이었다. 배우는 과목은 글쓰기, 글과 생각, 국어학개론, 국문학개론, 고전시가, 고전소설부터 현대소설까지 중세에서 현대국어까지 다양했다. 특히 교양과목은 신화이야기, 철학, 고전, 세상 읽기와 논술,심리학, 역사, 세계사 등 전공과목보다 더 재미있다.

 

방송대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밤늦게 책상 앞에 앉으면 인터넷 강의의 교수님 목소리는 자장가요. 교과서의 글자들은 수면제였다. 내 의지로 잠자리에든 적이 까마득하다. 듣고 읽어도 돌아서면 기억 속에 가물가물했다.  "배움이란 따라잡지 못 할 듯 하면서 또 놓지고 말듯한 느낌이 있지만 절대로 놓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 한 학기를 마칠 때마다 해냈다는 자부심에 기쁘기 한량 없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며 감동을 느낀다. 코로나 19로 중간고사, 기말고사 출석대체가 온라인 평가로 실시되었다. 한 학기에 기본 6과목 신청인데 욕심을 부렸다. 7과목을 자기만의 언어로 쓰는 것도 있고 문제를 만들어서 해설까지 곁들이는 과목도 있다. 훈민정음 언해 쓰기도 있다. 소설 쓰기, 시 쓰기 등 쉼 없는 도전이다. 방송대는 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즐거움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알기에 이 순간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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