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 갓김치 / 황정혜
해마다 4월이면 고향에서 택배가 온다. 겨우내 시린 바닷바람과 귀한 햇살을 온몸으로 품어 안은 돌산 갓김치다.
또 마지막이라는 말과 함께 부모님의 사랑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슬고슬한 쌀밥 위에 한 가닥 돌돌 말아 크게 한 입 씹으니 톡 쏘는 맛에 코끝이 찡하며 머리까지 띵하다.
입안에서 퍼지는 고향의 향기로움과 알싸한 맛에 눈물이 핑글 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이 내 눈물이 되어 식탁의 꽃으로 피어난 날.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의 눈물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늦가을이 되면 텃밭에 갓 씨앗을 뿌렸다. 어린 갓은 월동을 한다.
외관상으로는 다 시든 듯 보이는데 봄이 되면 파릇파릇 살아나는 게 신기하다.
동지섣달 기나긴 시간을 대지의 기운을 듬뿍 받아 갓 동을 올려 꽃을 피우고 씨앗을 품는다.
어린 갓 동을 베어 김치를 담그니 엄마는 이를 일컬어 보약이라고 했다.
갓은 깨끗이 손질하여 간을 한 다음 물기를 뺀다.
양념으로는 황석어젓과 새우젓, 마늘, 생강을 마른 고추와 함께 절구통에 갈아준다.
찹쌀풀과 당근 채를 썰어 넣고 잔파를 갓 동과 함께 양념에 버무린다.
궁합이 잘 맞는 굴을 곁들여 차곡차곡 가지런히 꾹꾹 눌러 담아서 보내 주는 정성이 눈에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진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정성이 들어간 갓김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내가 김장을 해서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아주 맛있어서 경로당에 한 포기 가져가셔서 자랑을 했단다.
평소에 김치 담그는게 자신 없었는데 엄마의 칭찬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딸 이바지는 담장을 넘는다고 무엇이든지 보내 드리면 극찬을 하시며 나눠 먹는다고 하셨다.
어릴 적부터 "콩 한톨도 나눠 먹어라'' 늘 말씀하셨다.
이젠 부모님은 병원을 내 집처럼 수시로 드나 드신다.
"이게 사람 사는 것 아니겠는가." 하시며 힘든 삶 너털웃음으로 견디어 내시는 부모님의 노후를 바라본다.
부모니까 괜찮았고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내가 얼마나 철부지 딸이었는지 가슴 깊이 느끼게 한다.
엄마, 할머니로 되는 순간 부모님의 삶을 들여다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사랑을 내 자식을 키우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인고의 세월 평생 갚을 수 없는 은혜에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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