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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남편의 기억 노트

by 嘉 山 2021. 10. 13.

남편의 기억 노트


"나 내일부터 이것 먹을 거야." 냉장고에 새로운 벽보가 붙었다. 이번엔 간 다이어트다. 최근 건강 검진 결과 지방간이 발견되었단다. 불혹을 넘기면서 가족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한 몸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한쪽 눈의 시력을 절반 잃고서야 고혈압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또 다른 병명들이 꼬리표가 되었다. 먹어야 될 약 종류와 개수도 많아져 정성을 기울이고 잘 기억해야 했다. 깜빡할 때도 있어 안쓰럽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많은 병들이 혈관질환으로 비만과 연관이 있으니 밥 세끼는 부담스럽단다. 그래서 점심만 밥을 먹고 아침과 저녁은 간단하게 먹고 싶단다. 그때부터 갖가지 건강 정보는 사람을 현혹시켰다. "나 이것 몸에 안 좋으니까 안 먹어." 남편의 말 한마디면 밥상에서 사라졌다. 아침, 저녁 메뉴는 주로 남편이 원하는 것으로 정한다. 당근과 사과 주스를 시작으로 신선한 야채 주스, 청혈 주스, 해독 주스는 기본이었다. 1년 이상 꿀에 재워 둔 마늘을 요거트나 계피가루에 섞어서 먹었다. 토마토 스크램블에그, 아보카드, 샐러드에 통밀빵 등 밥을 대신하는 식단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손질하는 정성과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 외 건강 보조 식품도 여러 가지를 챙긴다. 


점심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야겠다는 남편의 의지는 대단하다. 배고프면 짜증을 내는 남편이기에 그 시간이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문제는 주위 사람들한테도 아침 밥을 안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챙겨 주는 아침 식단은 그의 기억 속엔 없다. 남편의 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쩜 그리도 맛있게 먹는지 씹고나 삼키는지 순식간에 텅 빈 그릇이 된다. 손님들이 한마디씩 한다. 입맛 없는 사람은 같이 먹으면 입맛 돌겠다고.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데 허기를 참고 간단히 먹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가엾기까지 하다. 


정말 못 견뎌서 저녁을 배부르게 먹은 날은 행복해한다. 하지만 다음 날 그 죄는 다 내가 뒤집어쓴다. "여자가 손이 커서 많이 주어서 보대끼게 한다."고 노발대발이다.  먹은 사람은 본인이면서 왜 그렇게 남 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위안이 될까?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이어트 전공인 둘째 딸이 늘 말한다. "짜게 먹지 말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살이 찌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소 귀에 경 읽기다. 


나는 오늘도 바쁘게 간청 주스와 간청 볶음을 만든다. 미나리와 부추는 씻어서 식초물에 담근다. 전날 끓여 놓는 구기자물 100ml 에 토마토 60g,  사과 60g, 당근 60g, 부추 10g을 넣고 갈아서 먼저 마시게 한다. 공복에 효과가 좋다고 하니까. 간청 볶음은 마늘 20g을 썰어서 올리브 기름에 볶아 향을 내준다. 당근 50g, 새송이 버섯 100g, 미나리 50g,  부추 50g 순으로 볶는다. 굴 소스로 간을 하고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한다. 남편이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원하는 것 다 해줄 수 있다. "엄마! 아빠가 건재해야 우리가 시댁이나 남편에게 기 죽지 않고 살 수 있어요." 둘째 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우리는 앞뒤 따지지 않는다. 건강에 관련된 식품 선호도는 너무 빨리 바뀐다.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지 이런 것들을 선택할 때 그다지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인간이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건강해 질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더 큰 정신적 수양과 신체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몸이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꾸준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배가 나오고 건강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남편에게 물었다. 다이어트는 하는 것이냐고. 평생 하고 있다고 겸연쩍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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