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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재난 지원금과 대목 장사

by 嘉 山 2021. 10. 12.

재난 지원금과 대목 장사


“엄마 이 재난지원금으로 쇠갈비를 사겠어요.” 셋째 딸의 말에 조금 미안했다. 30년 동안 정육점을 하면서 좋은 부위를 가족들에게 먹여 본 적이 없었다. “장사하는 사람이 좋은 것을 먹으면 그 집은 문을 닫아야 한대.” 이기적인 내 변명이었다. 고기도 질감이 있어 손님들에게 팔기 힘든 등심 끄트머리를 먹였다. 쇠갈비도 다듬으면서 살이 별로 없는 것은 따로 빼 두었다가 명절날 갈비찜을 한다. 뜯어 먹을 게 없는 갈비찜을 먹으면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딸의 아쉬움이 컸나 보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대목 장사는 극한 직업이다. 몇 군데 회사에서 선물 세트 주문이 들어오면 평상시보다 몇 배 더 많은 도축 작업이 시작된다. 기름을 제거하고 부위별로 나눈다. 선물용 고기는 최고급 한우 암소 구이용이다. 꽃등심과 갈비 사이에서 두 근 정도 나오는 살치살과 갈비뼈를 다 발라낸 갈비살. 안창살과 토시살은  육즙도 풍부하고 풍미도 뛰어나다. 가장 부드러운 안심살과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꽃등심, 채끝, 낙엽살 등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내 것 주고도 욕먹는 세상이니 정성을 다해 달라."는 말을 들으며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칼질을 해서 하나하나 진공 포장을 한다. 부위별 명칭과 등급 개체 번호를 붙여서 한지를 깔고 골고루 석작에 담는다. 공단 보자기에 싸서 다시 얼음을 가득 채운 아이스박스에 넣어 택배로 보낸다. 받아보신 분들이 맘에 들어 또 주문하니 갈수록 양이 늘어 간다.


쇠갈비 예약은 명절 보름 전에 끝난다.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부족한 전감은 장사 마무리될 때까지 전쟁이다. 전감 부위를 얇게 썰어서 연육기에 서너 번 다진다. 사이사이 하얀 비닐을 넣어 한 근씩 진공 포장한다. 구이용과 전감 포장은 손이 많이 가서 새벽 두세 시까지 일을 했다. 명절 열흘 전에는 감사 할인 행사도 했다. 손님들 얼굴이 화기애애하다. 사랑 나눔 가게로 지정되어 도움도 드렸더니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다. 예전에는 “덩어리로 뚝뚝 떼어 주세요.” 했는데 요즘은 한번 먹을 만큼씩 썰어서 적은 양을 포장하기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두세 시간씩 얘기를 나누며 기다려 주시던 분들도 코로나 19 여파로 기다림 자체를 힘들어하신다. 특히 젊은 세대는  시간 약속이 정확해야 한다. 몰려드는 손님과 예약, 빨리 달라고 소리 지르는 손님들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재난 지원금으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쇠고기를 사시는 분들이 많아 우리 가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갈비가 참 맛있다야.” “아버님! 형님만이 할 수 있는 비법이에요.” 아흔한 살의 시아버님 말씀에 셋째 동서가 활짝 웃는다. 가족들에게 올해도 살 붙은 갈비는 못 먹였지만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체력이 따르지 못하니 대목 장사가 많이 힘들다. 먼 훗날 되돌아보면서 가장 좋은 때였다며 미소 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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