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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방

애증의 커플

by 嘉 山 2020. 6. 18.

애증의 커플 / 황정혜

 

어릴 적 내 별명은 무량태수였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한 심성을 가졌다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성격이 천하태평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다. 지금도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 편히 살자'는 말이 내 생활 신조다. 결혼해서 딸 셋을 낳고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다. 정말 천하를 다 얻은 듯 기뻤다. 무뚝뚝한 남편은 고생했다며 업어주기까지 했다. 우리 아들은 자연스럽게 귀남이로 불렷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딸들은 할머니께서 차별이 너무 심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남편은 딸들 속에서 아들이 나약하게 자랄까 봐 강하게 키운다는 명목하에 많이 혼내고 잘못하면 때리기까지 했다. 아들 낳아서 행복했던 시간은 잠깐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이 학교 육상 선수로 뽑혔다. 특출나게 잘하지 않으면 공부도 운동도 다 못 하게 되니 공부를해야 한다는 아빠와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아들과 팽팽하게 대립하여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초등학생이니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부탁해도 소용이 없었다. 타고난 성격 탓일까, 자라난 환경 탓일까 아들은 성격이 참 예민했다. 중학생이 되어 상위권 성적은 사춘기를 겪으며 곤두박질했다.

 

 잔소리가 늘어가는 아빠와 눈 부릅뜨고 대드는 아들 사이에서 애간장이 녹았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아들이 안쓰럽기도 했다가 밉기도 했다. 더 미운 건 남편이었다. 나름대로 <<주역>>도 공부하고 공자 왈 맹자 왈 떠드는 사람이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싸우고 있으니 가부장적인 권력자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도 다니고 등산도 함께 했다. 강제성이 많이 따랐지만 좋은 얘기도 들려주면서 '지금은 비록 힘들게 할지라도 아빠, 엄마가 바르게 산다면 언젠가는 철이 들겠지.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다른 말은 듣지 않아도 아빠의 "꼴 보기 싫다 나가 버려라."는 말은 잘 들었다. 다행히 집은 나가도 학교는 꼬박꼬박 다녔다. 친구도 많아 핸드폰에는 수백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온갖 말썽을 부리던 아들이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집에서만 말썽을 부렸지 선생님들은 예뻐해 주셨다며 웃는다.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웠다.

 

 광주로 대학교를 가니 아빠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집에 오는 날은 힘없이 앉아 있는 아빠에게 "싸울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하면서 농담도 했다. 아들 성격이 아빠보다는 더 명랑하다. 용돈은 책 읽고 독후감을 써 오면 주기로 했다. 책을 통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목대 경영학과로 편입해 오면서 면접시험에 아빠가 해 주신 말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좋아했다. 잔소리라고 온갖 짜증 내더니만 그래도 마음에 새겼나 보다.

 

 남편은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동생들은 고생을 안 시키려고 책임지고 가르쳐서 결혼까지 시키며 부모님 대신 장남의 역할에 충실했다. 형 말이라면 모두가 순종했다. 남편의 생활신조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다. 우리 가족 중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열심히' 라는 말이 본인이 기준이 된다는 게 큰 문제다. 인정도 많고 부지런하고 일 처리도 야무지다. 그런데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거친 말투, 폭풍 잔소리 때문에 좋은점들이 다 묻혀 버린다. 엄마와 작은아빠들이 아빠의 잘못을 깨우쳐 주지 않아서 독불장군이 되었다며 자신이 고치게 하겠단다.

 

 군 제대한 아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리 가게에서 일한다. 칭찬에 인색한 아빠와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들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한다. 아빠가 잔소리를 1/10로 줄였으면 좋겠단다. 딸이 말했다. "우리도 아빠 때문에 힘든 시기가 있었다. 사회에서도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듯이 가정도 작은 사회이므로. 모든 어려움을 잘 이겨 내고 굳건하게 자리 잡을 때 아빠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외모도 성격도 목소리도 닮은 두 사람은 떨어져 있으면 서로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생각한다. 많이 참고 있다는 남편을 나는 오늘도 달랜다. " 청춘은 많이 아픈 거래요. 당신이 아들보다 더 힘든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남편도 아들에게 조심해서 말하고  아빠의 잔소리가 아들을 향한 절실한 사랑의 노래였음을 빨리 헤아리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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