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 황정혜
어릴 적 우리 집은 농사일이 많았다.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있는 집안일 중 하나는 밥 짓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보리를 커다란 돌절구통에 넣고 물을 살짝 뿌린다. 절굿공이로 찧고 몽돌로 뽀얗게 문지른다. 바가지로 옮겨서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군다. 가마솥에 앉힌 후 물을 부어 불을 지피면 김이 오른다. 뜸 들인 뒤 쌀을 한 줌 씻어 넣고 다시 밥을 한다. 뜸을 잘 들여 고슬고슬한 밥은 단 냄새가 난다. 다시마와 멸치를 넣은 쌀뜨물에 데친 시레기를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서 다진 마늘과 얼큰한 고추를 넣어 끓이면 시원하고 구수한 시래깃국이 된다. 골고루 섞어서 담은 밥과 따뜻한 국, 엄마표 김치와 고추장을 함께 부모님께 차려 드린다. 소박한 밥상이지만 굉장히 기뻐했다.
중학교부터 배를 타고 통학 했다. 엄마는 힘드실 텐데도 늘 새벽밥을 하셨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면 밥 냄새가 달콤했다. 제철에 많이나는 재료로 만든 엄마의 정성 깃든 밥상은 생명의 에너지원이었으며 사랑이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모습만 보아도 배부르다는 말씀에는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참교육은 부모님을 보고 배우는 것이었다. 자식들에게 아침밥을 꼭 먹어야만 학교를 가게 했다. 안 먹으면 떠서 입에 넣어 주었다. 왜 그렇게 아침밥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운동회 때는 아침을 먹지 않아야 잘 뛸 수 있는데 엄마 때문에 1등을 놓쳤다며 아들이 슬퍼했다. 딸이 엄마가 되어보니 아침밥이 애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며 함박웃음을 보인다.
시부모님이 기력이 쇠해지시고 갈비뼈가 골절이 되셨다. 전복 , 낙지, 쇠고기를 갈아서 불린 찹쌀과 함께 참기름에 볶다가 사골 국물을 부어서 자주 저어주면서 끓인다. .당근과 애호박을 채를 썰어 넣어 한소끔 더 끓여서 간을 맞춘다. 또 백합 끓인 국물로 죽을 쑤어 드리니 잘 드셨다 . 아버님이 잘 해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건강한 밥상은 치유의 힘이었다.
'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 름 휴 가 (0) | 2020.09.29 |
---|---|
할매의 탄생을 읽고 (0) | 2020.08.21 |
ㅅ ㅇ 영정사진 (0) | 2020.06.28 |
준비하는 취미 (0) | 2020.06.26 |
장사는 사람을 얻는 것이다. (0) | 2020.06.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