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가장 한국적인 고전 민요다.
기원이나 출현 시기, 작자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국의 노래, 세계의 노래로서 은근과 끈기의 정서가 녹아 흐르며 우리 민족이 겪어낸 특별한 역사적 고난과 이를 극복한 사회적 경험이 배어있기에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 그 자체이며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기에 아리랑의 참 모습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세한 공부가 필요하다.
아리랑의 전파 경로와 각 지역 아리랑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기 이전에 먼저는 아리랑의 기원과 그 역사적 상징에 대해 알아보자.
아리랑의 기원에는 대체로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여음인 ‘ 아리랑 ’ 의 어원에서 그 바탕을 찾고 있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 전후한 시기이다. 아리랑의 최초의 형태가 1930년대에 정착한 아리랑과 유사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 1 ) 아리랑 :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나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 2 ) 아이농설 :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했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 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 ” 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 3 ) 아리랑설 : 역시 흥선대원군 시절 경복궁 공사에 부역은 인분들이 부모 처자가 있는
고향 생각을 하며 아리랑 아리랑 노래한 것이 발달이었다는 등의 유래가 있다.
( 4 ) 아랑전설 : 밀양 영남루의 아랑 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 5 ) 알영설 : 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
이 밖에도 여러 발생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그저 구음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 유래했다고 봄이 바람직하다.
이번에는 아리랑의 역사적 상징에 대해 살펴보자.
아리랑은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본래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주로 두레 노래로 불렀으며 따라서 구슬과 암기에 의한 전승 또는 자연적 습득이라는 민속성 이외에도 지역 공동체 집단의 소산이라는 민족성을 가지게 되었던 그 집단성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백성들이 생활 속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았다는 점에서 직업 공동체, 사회 공동체의 이른바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노래가 되었고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민족의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기도 했다.
아리랑은 단순히 단일한 장르의 민요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성과 초역사 성을 지닌 음악사, 문학사, 예술사의 거봉으로서 우리 민족의 원초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이란 매혹적인 용어에 다양한 주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이는 아리랑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각별하다는 반증이며
우리 민족은 아리랑의 정확한 어원에 대한 규명이 없어도 그 가락과 그 노래에 무한한 포근함을 느낀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구성된 가장 아름다운 곡 선정 대회에서 82%라는 높은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는 놀라움과 함께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아리랑에 대해서 공부 해 본다.
1. 아리랑의 전파 경로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조사된 아리랑은 그 종류만 해도 50여 종에 이르고 강원도 아리랑만 해도 20여 종을 헤아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리고 분포도를 보면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북쪽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걸쳐서 퍼져 잇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리랑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으로는 거의 전 지역으로 퍼져서 각 지방의 특색에 맞도록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백두대간의 태백산맥이 자리 잡고 있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서울에 이르고 남쪽과 동쪽으로는 밀양과 진도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이 분포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아리랑은 우리 민족 전체의 노래라고 해도 가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아리랑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정선 아라리를 시작으로 강원도지역만 보더라도 평창, 춘천, 인체, 양양 등의 아리랑과 더불어 강원도 아리랑이 조사되어 있다.
그리고 경상도 지방인 영남 쪽으로 내려가면 예천 아리랑, 문경 아리랑, 영천 아리랑, 하동 아리랑, 밀양 아리랑 등이 조사되어 있다.
울릉도와 독도에서도 아리랑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충청 전라도 지역에서는 공주와 대전지방의 아리랑이 조사되어 있고 남원 구례 등을 거쳐 진도 아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북쪽으로 올라가면 서울, 경기 아리랑을 비롯하여 해주, 황해도 아리랑 등으로 부르는 것들이 보이지만 역시 우리가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금강과 섬진강 등을 중심으로 하는 백두대간과 어우러진 지역이 중심을 이룬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 동쪽 전역과 한강 유역 등에 분포, 수로로는 조양강을 따라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물길로 서울까지 닿을 수 있는 길인데 정선은 아리랑을 낳고 키웠으며 아리랑을 다른 지방으로 전파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진도아리랑은 전라남도 진도 지방에서 여성들이 부르는 대표적인 민요로 전라도 지역에 광범위 하게 퍼져 있다.
밀양아리랑은 경상도 남부지방의 아리랑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정선에서 시작된 아리랑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타고 남으로 달려와서 예천, 상주, 문경, 영천 등을 거치면서 새로운 아리랑을 낳았고 낙동강 주변에 형성된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아리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천아리랑은 경상북도 북부지방을 대표하는 아리랑으로 배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에 포근하게 쌓여 있으며 동남쪽으로 낙동강의 물줄기가 들판을 적셔 비옥한 평야를 만들어내는 소백산맥의 바로 아래 위치한 고잔까지 생각된다.
2. 각 지역 아리랑의 특성
( 1 ) 정선 아리랑 : 아리랑의 원조이며 분포 지역이 넓다.
종류에는 긴 아라리, 자진 아라리, 엮음 아라리가 있다.
◌ 내용은 남녀의 사랑, 이별, 신세한탄, 세태 풍자 등 다양하며 가사에 정선 지방의 지명이 많이 나온다.
◌ 형식은 2행 1연의 장절 형식이다.
◌ 가락은 매나리토리의 애조 띤 느낌이며 콧소리르 많이 낸다. 음계는 미, 솔, 라, 레, 도의 5음 음계이며 라로 끝난다.
‘ 정선 아라리 ’ , ‘ 아라리 ’ 라고도 한다. 긴 아라리는 9 / 8 박자로 느리며 장식음이 발달하여 있지 않고 최고음과 최저음의 차이가 단 7도로 적어 선율의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단조롭게 들린다.
여기에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 라는 후렴이 붙는다.
긴 아라리를 부르는 가운데 단조로움을 털어내기 위해 엮어내는 사설은 반복과 나열의 형식을 통해 확대 된다. 정선 지방의 토속민요로서 귀중한 문화 유산의 하나다.
. ◌ 정선에 남은 아리랑 유적으로는 아우라지 처녀상과 정선 아라리 비석이다. 그 외에도 정선 아리랑비, 도원 가곡비, 칠현비, 거칠현둥비 등이 있다. 가사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자료만도 수백 수에 이른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싸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 2 ) 진도 아리랑
진도 소리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육자배기 가락에 맞도록 새롭게 형성된 가락의 흥겨움과 구성짐에 있다.
그리고 진도 사람이면 누구나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매기고 받는 방식으로 무한정 부를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아리랑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가진 것으로 내용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그 시대를 아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면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들을 노래 속에 가장 잘 녹여 낸 것이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잇는데 아리랑 중에서도 진도 아리랑이 가장 폭넓게, 그리고 가장 적나라하게 녹여 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도에서는 “아리랑 타령”이라고 부르는데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로 시작되는 민요로 선창자가 부르면 여러 사람이
그 소리를 받아서 후렴을 부르고 다시 선창자가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선후창 형식이다.
( 3 ) 밀양 아리랑
노래의 가사로 볼 때 밀양 아리랑은 밀양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루와 아량각이 소재의 중심으로 작용하며 농경문화와 산간문화를 아우른다.
정선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남으로 퍼져나간 아리랑이 밀양 아이랑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화적인 지속과 음악적인 변화를 동시에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세마치 장단에 맞추어 비교적 빠르게 부르며 할달한 느김을 준다. ‘ 라, 도 , 레, 미, 솔 ’ 의 5음 음계이고 ‘ 라 ’ 로 시작하여 ‘ 라 ’ 로 끝맺는다.
특이한 아리랑 아이랑다쿵은 산림문화와 관현이 있는 노래로서 주로 남성들에 의해서 불려지며 내용도 여성에 대한 묘사가 중심을 이룬다.
“ 아리랑다콩 쓰리당다콩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잘 넘어간다.
물명주 단속곳 널러야 좋고 홍당목 홍치마 붉어야 좋지
아리당다콩 쓰리당다콩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잘 넘어간다.
물 길러 가는체 술 걸러 이고 오동나무 수풀 속에 임 찾아간다.
아리당다콩 쓰리당다콩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잘 넘어간다
솔가지 담장은 높아야 좋고 술집에 아줌씨 고와야 좋다. ”
( 4 ) 예천 아리랑
선비문화의 단아함과 농경문화의 정결함이 한데 어울린 것으로 우리에게 상쾌한 느낌을 들게 한다. 예천 아리랑을 예천 지방의 대표적인 소리라 할 수 없지만 가까운 지역인 문경과 상주의 아리랑과 함께 경상도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아리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예천은 영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소리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힘차고 애절한 가락의 농요는 우리나라 소리의 백미라고 할 만한다. 이런 예천의 소리 문하에 녹아 들어서 경쾌하고 힘찬 노래들이 잇다.
도움소나 에이용 같은 노래는 남성의 힘이 그대로 베어 있는 민요다. 예천 아리랑은 어휘의 반복뿐만 아니라 특이한 반복 구조가 있다.
첫째는 ‘ 아리 ’ 라는 어휘의 계속적인 반복인데 이러한 반복구조는 노래하는 사람의 감정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힘을 싣는 구실을 한다. 둘째 매기는 소리의 앞에 있는 받는 소리와 두에 있는 받는 소리가 형태적으로 비슷하나 내용을 달리하고 잇다는 점이다.
문경, 상주 아리랑과 함께 영남 북부 지방의 아리랑을 대표하면서 낙동강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달려가 밀양 아리랑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아리 아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 넘어간다. 언제나 언제나 고운님 만나 두리둥실 높은 집에 잘 살아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얼어다가 녹아지면 봄철이나 아리 아리 아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 넘어간다.
산천이 고와서 나 여기 왔나 님보기 좋아서 나여기 왔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생감자를 먹었는지 왜이리 애리.
“ 아리 아리 아라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개 입자 당신 넘을 고개 한 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 넘가주소 .”
한국의 3대 전통민요 아리랑은 「 정선 아리랑 」 「 진도 아리랑 」 「 밀양 아리랑 」을 말한다.
이 외에도 부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활 환경과 연결된 접근을 통하여 「 춘천 아리랑 」 「 본조 아리랑 」 「 광복군 아리랑 」 조국을 빼앗기고 소련으로 떠난 알타아타시의 한인들이 부른 노래 「 치르치크 아리랑 」 러시아의 바이칼 소수민족 에벤키족으 유전자가 우리와 70 % 동일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아리랑 뜻은 맞이하다 쓰리랑 뜻은 느껴서 알다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고대 북방 샤머니즘의 장례문화에서 영혼을 맞이하고 우리의 슬픔을 참는다는 의미로도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다.
아리랑이라는 민요 속에도 담겨진 큰 뜻은 참 나를 깨달아 인간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깨달음의 노래이다.
‘아’는 참된 나를 의미하고
‘리’는 알다. 다스리다. 통하다는 뜻이며
‘랑’은 즐겁다. 밝다.는 뜻으로 아리랑은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것은 곧 피안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진리를 외면하는 자는 얼마 못가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으로 아리랑의 이치와 도리를 알고 나니 아리랑은 ‘한의 노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깊은 숲을 가진 산 속 작은 샘에서 발원하여 적은 물길이 내를 이르고 다시 하천에서 거대한 강을 만들어 넓은 땅을 풍요롭게 적셔 주듯이 우리 민족의 아리랑 길 또한 우리 조상님들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크로드를 넘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아리랑 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본다.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고 동해의 ‘해파랑 길’을 걷는 중인데 조상님들의 숨결을 느끼며 새로운 의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대중가요, 영화, 문학, 무용 등 전 예술분야에 파급효과를 나타내며 남북이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는 아리랑이 민족 화합의 노래로서 널리 불리고 있다.
지은이 : 황정혜
[ 참고 문헌 ]
: 브리테니커 백과 , 튜터님믜 자료집, 아리랑 로드 허대찬 저, 아리랑 로드 ( 공저 ) : 이재열,m 박종만,m 조성윤, 김수복, 백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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