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제명 》
국어사(우리말의 역사)연구의 목적과 연구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시오(1강 참조)
국어의 계통에 대하여 설명하시오(2강 참조)
국어의 형성과 국어사 시대 구분에 대해 설명하시오.
우리 말을 적는 여러 가지 문자(표기)체계와 그 변천에 대하여 설명하시오(4강 참조)
Ⅰ. 서론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우리말도 과거로부터 쉼없이 변화해 왔다. 지금도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엔 그 변화를 인식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작은 변화들이 쌓이다보면 지난 시기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역사는 현재를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나아가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중요한 일부였던 우리 옛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말의 뿌리와 역사에 대하여 연구하는 국어사를 통해 국어가 변화해 온 과정을 음운, 문법, 어휘 등의 측면을 시대별로 공부하여 현대국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자 한다.
Ⅱ. 본론
국어사(우리말의 역사)연구의 목적과 연구방법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1) 국어사(우리말의 역사) 연구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말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이 반영되어 있다. 즉 우리 민족역사의 일부분이다. 둘째, 국어사 연구의 발전으로 고전작품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하여 고전문학작품들을 읽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다. 셋째, 현대국어는 옛말의 연속선 위에 존재하기에 현대국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묏부리>멧부리, 묏새>멧새, 갈치(갈ㅎ+치)가 있는데 이 예들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합성어나 파생어에 옛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2) 국어사(우리말의 역사)의 연구방법
역사언어학의 연구방법으로 역사언어학은 통시언어학이라고도 한다. 즉 시간을 관통해서 연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어떻게 변하는가, 왜 변하는가를 밝히기 위하여 생긴 학문이다. 19세기 유럽언어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언어에 대한 연구는 언어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같다. 20세기 이후에는 어느 한 시대의 언어의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인 공시언어학과 함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
(1) 문헌 자료의 연구
옛 문헌을 통하여 언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언어를 문자로 기록되어 보존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문자는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유념할 사항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문자의 보수성을 명심해야한다. 예를 들어 모음글자 ㆍ(아래아)를 19세기 이후에도 사용한다.(모음음소[∧] (ㆍ)는 18세기 이전에 [a](ㅏ)에 합류되었다. 모음글자 ‘ㅚ’와 ‘웨ㅐ’, ‘ㅔ’와 ‘ㅐ’으 ㅣ표기하다(20세기 중반부터 발음이 같아졌다.) 둘째, 문자의 환영에 속지 말 것이다.(같은 문자≠같은 음가) 예를 들어 한자 ‘叱’ (고대[ㅅ], 현대 [질])이고 ‘尸’(고대[ㄹ],현대[시])이다. 모음글자 ‘ㅚ’(중세[oy], 현대[we]), ‘ㅐ’(중세[ay], 현대[ɛ])이다.
(2) 비교방법
문헌 자료를 통한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한글 창제 이전의 한자 자료나 이후의 한글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문헌자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광의의 비교방법은 언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기본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문헌 간 비교연구, 방언 간 비교연구가 있다. 협의의 비교방법은 언어의 선사(문헌이전의 역사)를 밝히는 방법이다. 동일 계통의 언어를 비교하여 공통조어를 재구하고 그 조어로부터 갈라져 나온 언어들이 변천한 과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3) 내적 재구
문헌의 결핍을 보충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내적재구는 공시적 상태가 보여주는 암시에 근거하여 그 이전의 상태를 재구하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모음 앞에서 ‘낫’,‘낮’,‘낯’,‘낟’,‘낱’ 자음(또는 휴지)앞에서 모두 ‘낟’[nat]이다. 기원적으로는 이들 말자음(末子音)이 모두 발음 되었으나 후대에 하나로 합류되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15세기 국어 ‘나모’木는 ‘나모(자음 앞) ~남ㅓ(모음 앞)’을 교체되는데 이는 기원적으로 ‘나ᄆᆞ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방언의 연구
빈약한 문헌 자료의 결함을 보충해주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현대의 여러 방언들은 국어사 자료의 살아있는 보물창고다 문헌 자료에 의한 국어의 역사는 대부분 중앙 방언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방언학의 역할이다. 완전한 의미의 국어사는 우리말 모든 역사를 포함해야 한다. 중앙 방언에 한정된 국어사에서도 방언의 중요성은 크게 인정되고 있다. 첫째로 중앙 방언의 역사에는 다른 방언들의 간섭이 있었다. 둘째, 방언들의 단어 및 문법 형태의 현재의 분포는 역사의 공간적 투영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Ⅱ. 국어의 계통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언어의 계통적 분류
◆ 언어의 분류방법
- 유형적 분류 : 문법적(형태적)특징에 따라서 언어를 분류(예) 굴절어, 교착어, 고립어
- 계통적 분류 : 친족관계에 따라서 언어를 분류 –같은 조상 언어에서 갈려 나온 언어들을 하나의 어족으로 묶어서 분류하는 방법이다.
◆ 비교방법(언어들의 비교) ⇒ 공통 조어의 재구시도 재구형에는 별표(*)를 붙인다. ‘*’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언어학자들이 재구형 해놓았다는 표시이다.
◆ 어족(語族(말씀어, 겨레족))의 수립 (지구상에 대략 18개 어족 존재)
인도·유럽어족의 확립-19세기 초엽, 유럽에서 비교언어학의 발달과 결과
세미트어족, 하미트어족= 하미토·세미트어족
우랄·알타이어족 (우랄어족:핀·우그르제어,사모예드어, 알타이어족:터키제어, 몽골제어, 퉁구스제어(한국은 알타이어족))
※ 중국·티베트어족, 남아어족 말레이·폴리네시아어족…….
2. 알타이어족(알타이는 산맥의 이름이다.)산맥과 관계는 없다.
(1) 알타이제어
① 터키어군:추바시어~야쿠트어 돌궐비문, 위구르문서
② 몽골 어군: 칼카방언, 부랴트어, 칼무크어, 칭기츠칸 비문(위구르문자)
③ 퉁구스 어군(만주·퉁구스어군):
북방군:에벤키어, 라무트어, 솔론어 등
남방군:만주어, 나나이어, 올차어 등
(2)알타이 제어의 공통 특질론
◆ 한국어의 우랄·알타이어족 계통설(19세기)
• 해당 언어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몇 개의 현저한 구조적 특징에 입각한 것이었다.
• 그 공통특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모음조화와 문법적 교착성이었다.
• 이러한 공통 특징만으로는 친족관계를 증명하기에 불충분하다.→다만 친족관계에 대한 강력한 암시만을 던져줄 뿐이다.
※ 우랄·알타이어족 학설이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으로 나뉜 이후 한국어의 알타이계통설로 발전했다.
1) 음운론적 특징
① 모음조화 :
- 한 단어 안의 모음의 동화현상 예) 촐랑촐랑, 출렁출렁
- 구개적 조화(전설모음과 후설 모음의 대립) cf. 순적 조화(평순모음들의 결합)
② 두음법칙 : 어두에 자음군이나 유음(특히 r)이 오는 것을 피하는 현상
③ 모음교체나 자음교체가 없음
• 인도·유럽 제어에서 문법적 기능을 바꾸는 기능(예: Sing, Sang, Sung)
• 알타이 제어에서는 파생과 굴절이 접미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2) 문법적 특징
① 교착성
• 19세기 중엽, 세계 언어의 형태적 분류(굴절어, 교착어, 고립어)에서 나올 용어
• 국어와 알타이제어의 모든 파생과 굴절은 접미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 어간과 접미사의 연결이 매우 기계적(규칙적)
• 모든 접미사는 단일한 기능을 가진다.
② 관계대명사와 접속사가 없다.
• 접속사 결여를 부동사로 보충 예) 먹고 먹어, 먹으니, 먹으면
※ 국어와 알타이 제어의 문법적 차이
• 알타이제어의 명사는 아무 조사 없이 주격형으로 쓰인다.
• 동사 어간은 어미없이 명령형으로 사용한다.
• 동사 어간은 어미없이 명령형으로 사용된다.
3. 국어와 알타이 제어의 비교
◆언어의 친족관계 증명
• 언어들간의 유사성
① 언어 보편적인 유사성 ② 우연적인 유사성 ③ 차용에 의한 유사성 |
⇒친족관계 증명에서 제외되는 유사성 |
④ 기원적 유사성- 친족관계 증명에 유효한 유사성 |
◆ 엄밀한 ‘음운 대응의 규칙’ 수립 하는 것이 바로 비교방법이다. 언어의 계통을 수립하고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 언어의 비교는 외형의 유사성보다 이 대응의 규칙이 중요하다. “ 동계 언어들의 사뭇 다른 음운 체계는 공통조어의 음운 체계로부터의 서로 다른 규칙적 변화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1) 음운의 비교
국어와 알타이 제어 사이의 모음대응 규칙은 부정확하나 자음 특히 어두자음의 대응 규칙은 수립되어 있다.
1)국어의 ‘ㅂ’고 ㅏ알타이 조어의 ‘*P-’의 대응
- (알타이제어의 ‘P –F –H -∅’)와 국어의 ‘ㅂ’이 대응한다.
2) 유음의 대응
• 알타이 제어에서 r은 어두에 나타나지 않으며 1도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국어에는 유음이 ‘ㄹ’하나 밖에 없는데 다른 알타이어들은 1과 r을 가지고 있으며 터키어는 1,r과 함께 S,Z를 보여 줌, 이를 토대로 알타이조어에 두 개의 r(*r¹,*r²)과 두 개의 l(*l¹, *l²)을 재구하기도 한다. 국어는 r과 l의 합류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한다.
(2) 문법의 비교
• 문법 체계는 차용이 거의 없고 보수적이어서 고유요소의 중심부를 이룬다. 따라서 문법체계의 비교는 언어의 친족관계를 증명하는데 있어 가장 존중되는 사항이다. 알타이 조어의 문장에는 명사문이 많았다. 알타이 제어에서는 동명사 머미가 매우 중요하여 많은 활용형이 동명사형에서 기원하며 동사의 서술형에도 동명사형이 그대로 ㅅ ㅏ용하는 예가 보인다.
• 중세국어의 ‘ᄒᆞ리라’, ‘ᄒᆞᆫ다’등은 동명사 ‘ᄒᆞᆯ’,‘ᄒᆞᆫ’에 ‘이라’, ‘다’가 붙은 것으로 해석된다.
• 알타이 제어와 국어의 동명사의 의미
① -*r.반사형: 중세국어의 동명사의 어미 ‘-(ᄋᆞ/으)ㄹ’
② -*m의 반사형: 중세국어의 파생접사 ‘-(ᄋᆞ/으)ㅁ’ 중세국어의 동명사 어미‘-(오/우)ㅁ’
③ -*n의 반사형: 중세국어의 동명사 어미 ‘-(ᄋᆞ/으)ㄴ’ 예) 서술형 어미 : ᄒᆞ리라(←ᄒᆞ+이라), ᄒᆞᄂᆞ니라(ᄒᆞᄂᆞᆫ+이라) 의문형 어미 : ᄒᆞᆯ+다), ᄒᆞᆫ다(ᄒᆞᆫ+다)
• 언어의 친족관계 증명
지극히 특수한 사실(절대로 우연한 유사로 볼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증명되는 것이다.
• 문법적 불규칙성의 일치(인도·유럽제어 예) 보충법)
영어 | good | gut | 독일어 |
better | besser | ||
best | best |
음상, 의미, 교체의 조건에서 일치(우연성이 개재할 여지없다.)
• 알타이 제어와 국어의 동맹자 일치(개별적, 구조적 일치)
• 알타이 제어와 국어는 문법적으로 매우 ‘규칙적인’언어- 알타이 제어와 국어의 친족관계증명에 큰 난점이 있다.
(3) 어휘의 비교
• 국어와 퉁구스 제어의 어휘 비교(알타이 제어 가운데 가장 많은 일치)
예) 발(足): 골디어 palgan, 에벤키어 halgan
ᄒᆡ:만주어 Šun, 솔롱어 Šigun/나랗:만주어, 골디어na
• 국어와 터키 제어의 어휘 비교
예) 날(日):몽골어 naran(태양)/눈(眼):몽골어 nidűn<*nűn-dűn
• 국어와 터키 제어의 어휘 비교
예)은(100): 고대 터키어(10)
알타이 제어 사이에 수사의 일치는 매우 드물다. cf. 인도·유럽 제어에서는 수사의 일치가 현저하다.
4. 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국어와 일본어의 동계설
• 일본어의 계통
- 북방계설 : 일본어와 국어의 동계설(19,20세기 교체기)
- 남방계설
• 국어와 일본어의 동일 계통설
-구조상의 현저한 일치
- 알타이 제어와 국어의 공통 특징(모음조화 제외)
• 그러나 어휘와 문법적 요소의 일치는 매우 빈약(‘그럴듯한’ 유사를 보이는 단어 200여 개, 접미사 15개 정도
• 일본어의 개음절성(모음으로 끝나는 음절)
알타이어계통의 언어가 일본에 들어가기 전 언어의 저층의 영향으로 설명된다.
• 국어와 일본어는 그 구조가 자못 유사하다.
• 국어와 일본어에서 어휘 및 문법적 요소의 일치는 매우 빈약하다.
• 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에서 주의할 것은 고대의 차용 : 고대에 적지 않은 국어 단어들이 일본어에 차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5. 국어의 계통적 위치
◆ 국어와 알타이 어족
• 알타이 제어와 국어의 비교방법 적용의 난점
① 각 어군의 고대 자료들이 적다.
② 각 어군에 속하는 언어들 사이의 차이 또한 적다.
③ 많은 언어가 자취도 남기지 않고 소멸하였다. ‘잃어버린 고린’(missŕng rink)
• 국어를 알타이 어족의 일원으로 보고 그 속에서의 위치에 대한 가설을 세운 사람은 람스테드와 포페
람스테트의 제자 포페 : 우리 말은 알타이어족에 가깝지만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확증은 아직 부족하다.
Ⅲ. 국어의 형성과 국어사 시대 구분에 대해 설명하시오.
고조선의 언어
◆ 우리 민족어의 기원
고조선의 성립과 언어
‘단군(檀君)’ , ‘왕검(王儉)’, ‘아사달(阿思達)’, ‘조선(朝鮮)’ - 이들 고유명사는 후대의 한자기록
• ‘왕검’의 ‘검’ ≒ 신라어의 ‘금’ [王]
• ‘아사달’의 ‘달’ ≒ 고구려어의 ‘달’[山]
• ‘조선’의 ‘朝’ ≒ ‘아사달’의 ‘아사’ (중세국어 ‘아’ 일본어 ‘asa’)
• ‘기자조선’의 ‘기자’ ≒ 백제어의 ‘긔ᄌᆞ’
2. 부여계제어
「삼국지(289년경) 「위지동이전」 의 기록
• 고구려어 = 부여어 (동이의 옛말에 부여의 별종이라 한다. 언어와 여러 가지 일이 많이 부여와 같다. 그 성품과 기질과 의복에는 다름이 있다.)
• 동옥저어 ≒ 고구려어 (그 언어는 고구려와 대체로 같으며 때때로 조금 다르다.)
• 예어 ≒ 고구려어 (그 늙은이들이 예로부터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동종이라고 하였다. 언어와 법속은 대저 고구려와 같다.)
• 읍루어 ≒ 부여어, 고구려어 (그 사람들의 모습은 부여와 비슷하다. 언어는 부여, 고구려와 같지 않다.)
• 서력 기원 전후,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는 3대 어군이 있었다.
① 숙신계제어 (읍루, 물길, 말갈) 퉁구스 어군
② 부여계제어 (부여, 고구려, 옥저, 예) 부여어가 가장 오래 됨 - 자료는 거의 없다.
③ 한계제어 (마한, 진한, 변한) - 고대 단계에서 이미 퉁구스계 언어와 부여계 언어구별
• 부여어의 자료
• 관직명 ‘마가, 우가, 저가, 구가’의 ‘가(加)’ ≑ 고구려 지명의 ‘개(皆)[왕]’ , 신라 관명의 ‘간(干)’ , ‘한(邯)’ , 몽골의 ‘qan’[통치자] 과 일치하는 말로 추정된다.
3. 한계 제어
• 진한어 ≑ 마한어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그 늙은이들이 대를 이어 스스로 말하기는 옛날 망인(亡人)이 진(秦) 나라의 난을 피해 한(韓)나라로 왔다고 하였다. 그 언어는 마한과 같지 않다.
• 진한어 ≑ 변한,(변진)어
변진은 진한과 섞여서 산다.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 부여계 제어와 한계 제어의 관계
• 중국 및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 현전 언어 자료의 검토를 통하여 규명하여야 한다.
4. 고구려어
부여계 언어 중 현전 자료가 있다. 고구려어에 대한 연구는 고구려어뿌ᇿ 아니라 북방 부여계 제어 전체를 밝혀줄 것이다.
「삼국사기」지리지
권 37 고구려 백제 지명- 기본자료 음독명과 석독명 병기 예)買忽[매홀]-음을 빌려 적었다. -元水城[운수성](똑같은 지명 뜻을 빌려 적었다.)/ 水谷城縣-元買旦忽: 물골짜기 마을
⇒ 고구려어 ‘매’(水), ‘단’(谷골짜기),‘홀’城(성) (지명표기에서 얻을 수 있는 고구려어 단어50~100개)
고구려에서는 물을 뜻하는 말이 매, 골짜기를 뜻하는 말이 단, 사람들이 모야사는 성을 홀이라 했다.
◆ 고구려어 단어와 관련 언어의 비교
예1) 매(水): 신라어(중세국어)‘믈’, 에벤키어 no, 만주어 muke, 몽골어 mőren(江), 일본어 midu
예2)‘단(旦), 돈(頓),탄(呑)’ 한자음을 빌렸다. [谷]:일본어 tani
예3)‘달(達)’[高山(고산)
예4) ‘나(那),내(內),노(奴)’ [토양(土壤)]:중세국어 ‘나라ㅎ(國,만주어,나나이어 na(地)
예5)‘바의(邑衣), 파혜(波兮)’ [바회]
•[현(峴), 암(巖)] 중세국어 ‘바회’ 암(巖)
예6) ‘어을((於 乙)’ [] : 신라어 ‘을’ 정(井)
예7) ‘내미(內米)’ [타(沲)] : 에벤키어 lamu, 만주어 namu(해(海)) , 일본어 nami(파(波))
• 고구려는 분명한 알타이계 언어
신라어와 가까우면서도 일본어와 각별한 친족관계
5. 백제어
• 백제의 성립과 백제어의 특징
백제는 부여계의 한 갈래가 한강 유역에 세운 고대국가
(이후에 마한 통합)
• 지배족의 언어 (부여어)와 피지배족의 언어(마한어)의 차이 (왕의성은 부여씨인데 ‘어라하’라 일컬으며 백성들은 ‘건길지’라 부른다. 중국어로는 다 ‘왕’이란 말이다.)
<주서(636) 「이역전 백제조>
• 백제 지명의 ‘부리(부리(夫里))’ -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 고구려어 ‘홀(忽)’, 신라어 ‘벌’(伐),‘블’(火)⇒ 중세국어 ‘셔’(京) ‘ᄀᆞ(郡邑)
백제 말은 어말 모음이 보존된다.일본말과 비슷하다.
• 백제어의 어휘
신라어(중세국어)와 대체로 일치
예1) 돌악(중세국어‘돌ㅎ’, 전라방언 ‘독<*돍> 예2) 사(중세국어‘새’)
예3) 믈거(중세국어 ‘ㅡ’ 예4) 모랑(중세국어‘ᄆᆞᄅᆞ’)
예5)‘城=’기(己)‘[고구려어, 신라어, 중세국어에 없는 단어
예6) 임금을 의미하는 ‘*기ᄌᆞ’등 긔ᄌᆞ
6. 신라어
• 신라의 성립과 언어의 통일과정:진한의 부족 중 서라벌이 주변 부족을 통합하여 성장했다.
• 6세기에 가야를 합병: 신라어 중심의 한반도 언어통일 과정에서 최초의 큰 사건
• 7세기 후반 삼국통일, 통일신라 성립
- 신라어 중심의 한반도의 언어적 통일
- 국어 형성의 역사상 최대의 사건
• 통일 신라의 언어적 영향
• 10세기 초까지 금성(경주)중심의 신라어가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파급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서라벌의 언어: 신라어의 중심언어⇒한반도의 언어
- 서라벌은 한반도의 라티움(Latium)에 비교될만하다.(이탈리아 반도 라티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어 라틴어가 표준화 되었다.
7. 중세국어
• 고려의 건국과 중세국어의 성립
• 10세기초, 고려의 새 왕조가 개경(개성)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정치적, 문화적 중심이 경주에서 개성으로 옮겨졌다.
• 경주 중심의 언어가 개성 중심의 언어로 변동되었다.
• 고려 중앙어의 성립은 10세기에 성립된 개성방언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 중세국어의 성립
-10세기 이후 개성 방언을 기반으로 형성될 것이다.
- 개성은 고구려의 옛 땅이자 통일신라의 서북변방
- 고구려어의 요소는 일부 남아 있으나, 신라어의 한 방언으로 규정되었다.⇒ 중세국어는 신라어를 근간으로 형성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8. 국어사의 여러 단계
부여,한조어 | → | 원시부여어 | → | 고구려어 | ↴ ↴ |
|||||
원시한어 | → | 백제어 | ||||||||
신라어 | → | 중세국어 | → | 근대국어 | → | 현대국어 |
• 고대국어: 주로 신라어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 중세국어의 시작: 고려 중앙어의 성립(훈민정음의 창제: 국어사 사대 구분과 무관)
• 근대 국어의 시작: 16~17세기 교체기:
- 임진왜란과는 무관하다. 16세기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였다.
* 현대국어는 20세기 초에서 지금까지 사용되는 국어
Ⅳ. 우리말을 적는 여러 가지 문자(표기)체계와 그 변천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1. 한문의 정착
우리 조상들이 접한 최초의 문자이며 고대 동아시아의 유일한 문자이나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 일본, 월남 등 한자 문화권을 형성했다. 한자로 우리말을 적는 방법으로는 우리말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한문으로 적었다. 이중 언어 사용으로 우리말에 한문요소가 침투했다.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는 방법으로 이두, 구결, 향찰이 있었다. 국어사를 연구하는 데는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는 방법이 아주 소중하다.
2. 고유명사 표기
• 고유명사 표기와 한자 차용 표기법의 원리
• 고유명사표기는 한자를 사용한 우리말 표기의 첫 단계
• 한자 차용 표기법의 원리
① 한자의 표음적 기능을 사용한다.
• 가차의 원리-한자의 육서(여섯 가지 구조와 사용의 원리)
예) 한자 ‘古’자를 의미와 관계없이 ‘고’[ko]라는 음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
② 한자의 표의적 기능을 사용한다.
예) 한자 ‘水’자를 음과 관계없이 ‘매’(고구려) ‘믈’(신라)이란 단어를 나타낸다.\
- ‘매’, ‘믈’은 ‘水’자의 새김[석 또는 훈]
이때의 ‘水’자를 석독자 또는 훈독자라 함.
• 고유명사 표기의 실제
하나의 인명이나 지명을 두 가지로 표기하는 관습
예) 買忽一元水城(고구려): 買忽(음독자)⇒‘매흘’⇐ 水城(석독자)
3. 이두
• 이두의 시작
-고유명사 표기를 넘어서 문장을 표기하려는 노력
• ‘이두’의 명칭:이두, 이토, 이도, 이서, 표기법과 이서의 관련성
• ‘이두’의 초기단계: 학문이 우리말 문장구조에 따라 고쳐진 것
예)임신서기석: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집지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井誓記 天前誓• 今自三年 以後 忠道執持 過失天誓……. (한자를 신라어의 어순에 따라 배열)
예) 경주 「남산 신성비」 우리말 어순 배열+문법형태 표기/ 「갈항사조탑기」등 본격적인 어두의 모습, 대체로 7세기에 이두의 체제 완성
•고려·조선을 거쳐 19세기 말까지 사용하였다.
• 이서들의 공문서에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는데 한문의 후광을 입고 있었다.
• 이두는 특수한 문어로 보수적이지만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4. 구결
구결의 성격
• 구결: ‘입겾’ 혹은 ‘입겿’이라고도 하며 ‘토(吐)라고도 한다. 한문을 읽을 때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삽입하는 요소
-구결은 신라시대에 시작, 설총의 공천
• 구결과 이두의 차이
-구결을 제거하면 한문 원문이 복원된다.
• 구결은 한자의 약체를 사용하기도 한다.口(古), 匕(尼)…….
- 일본문자와의 관련성이 ᄋᆔᆻ을 것이라 추측한다.
• 구결의 방식
① 음독구결: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한문 원문을 읽을 때 우리말의 문법요소(조사, 어미 등)를 끼워 넣어 읽는 방식이다. ② 석독구결(또는 훈독구결): 구결에 따라 원문을 읽으면 한문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방식이다. 한문 원문의 양 옆에 구결의 약자를 적고 점을 찍어 번역의 어순을 지시 예) 「구역인왕경」의 석독구결
※ 설총과 구결
(설총이)방언으로 구경을 읽어 후생을 훈도하였다. 지금까지도 학자들이 이를 존승한다. 「삼국사기」 권 46 설총은 이두와도 관련 있고 구결과도 관련 있다.
5. 향찰
향찰은 신라에서 한자를 이용하여 자국어를 표기하려는 노력의 집대성이었다. 새로운 원리를 가진 표기 체계가 아니라 기존의 고유명사 표기법과 이두 및 구결의 확대로 이루어진 표기 체계이다. 현전하는 향찰 자료는 향가에 국한되어 있다. (향가문학과 관련 있다.)
• 향찰의 표기 원리
-실질적 의미를 가진 부분(어간)⇒ 석독 표기
- 문법적 요소(접미사, 어미)⇒ 음독 표기
- 복잡한 체계의 표기법이었으나 우리말을 만족스럽게 표기하지는 못한다.
- 우리말의 음절구조가 복잡하고 그 수가 많은 것도 원인이다. 향가 자료로는 향가집 삼대목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6. 훈민정음
우리말의 완전한 문자화라는 오랜 민족적 소망을 달성한 것이다.
• 훈민정음 창제 관련 기록(1)
이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 그 글자는 고전을 본받았는데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뉘어 있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한자와 우리나라 말을 다 쓸 수 있다. 글자는 비록 간요하지만 전환이 무궁하다. 이를 훈민정음이라 이른다. 「세종실록」 25년 1443년 12월
• 훈민정음 창제 관련 기록(2)
계해년(1443년)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히 여의를 들어 보이셨다.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상형하고 글자는 고전을 본떴다. 「훈민정음」정인지 서문(1446년)
• 훈민정음의 문자적 특징
① 독창성
기존의 여러 문자를 참고했으나, 독창적인 제자 원리에 의해 제작(고전 모방설, 파스파 문자 관련설 등)
② 과학성
음소(낱소리와 해당 문자의 관계가 직접적이로 체계적이다. 正音二十入字 名象基形而制之
(정음28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해례 제지해>
※ 중국 음운학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였으나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 삼분법을 채택하여 진정한 음소적 문자 체계에 가까워졌다.
• 훈민정음의 창제 이후에도 이미 굳어진 한문의 지위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소수의 일부 계층이 특정한 경우에만 훈민정음을 사용했다. 시조나 가사의 표기, 한문 서적의 번역(언해)등에 국한되어 있어 언문이 종전의 향찰이나 이두의 지위를 물려받았음을 보여주었다.
• 훈민정음 사용의 확대
궁중나인, 사대부계층 부녀자들 사이에 보급되고 점차적으로 평민들 사이에서 확산되면서 언문일치의 이상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즉 19세기와 20세기의 교체기에 온 국민의 문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국어사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글이 창제됨으로써 중세국어가 한문 이두 뿐 아니라 우리말로 표기됨으로써 16세기 국어사 연구에 소중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Ⅴ. 결론
국어사의 연구방법에는 문헌자료의 연구와 그 한계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 비교방법, 내적 재구, 방언 연구 등이 있다. 언어의 변화는 음운, 문법, 어휘 등 언어 체계 전반에 걸쳐서 일어난다. 국어의 역사를 살피는 데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는 국어의 계통에 관한 것인데 우랄알타이어 계통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 위치를 자세히 공부하게 되었다. 우리의 선조들이 한자를 빌려서 쓰던 표기 방식과 더불어 우리 고유 문자인 한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문자 체계들과 그 변천에 대해 살펴보았다.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우리말도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계속 변화할 것이다. 선조들이 매일매일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면 우리말을 공부하면서 그분들의 숨결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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