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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무소유 - 법정 스님

by 嘉 山 2008. 12. 29.

무소유

 - 소유욕은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린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소유는 범죄인 것이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소유할 때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이것은 소유를 해도 범죄가 아닌 경우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소유를 해도 범죄가 아닌 이같은 경우는 보기 힘들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쉽지만 어려운 말이다. 난 백만장자의 첫사랑이라는 영화에서 몇백억의 유산을 상속받은 소년이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 유산을 포기 했을때야 비로소 그 유산을 받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 떠올랐다...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것들 중에서 이 영화로 인한 경험이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가장 와닿게 설명해주지 않았나 싶다.

 

너무 일찍 나왔군

- 똑같은 조건 아래서라도 희노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것을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 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것 같다. 이 말의 예로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속이 상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어진다. 또 다른 예로 버스를 타러 나왔는데 버스가 가버린 경우...다음 버스를 기다리면서 너무 일찍 나왔군 하고 생각한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시간을 뺏긴 데다 마음까지 뺏긴다면 손해가 너무 크지 않는가.

 

오해

 -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이다.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설해목

 - 아버지가 아들을 망나니라고 칭하며 학교와 집에서는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에게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보냈다. 아들은 스님에게 훈계를 들을 각오를 하고 기다렸지만 스님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아들을 씻기고 밥을 차려주는 등의 시중만 들었다. 아들은 훈계라면 진저리가 낫을 것이다. 아들에게는 백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을 것이고 이런 스님의 행동에 아들의 눈에서는 감동으로 인한 눈물이 흘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올바르게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회심기

- 본래무일물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예로 물건을 잃어버렸을 경우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한동안 맡아 가지고 있던 걸 돌려보낸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이란 손해란 있을 수 없고 또 내 손해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겐가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인형과 인간

-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무학이란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러 가지 지식에서 추출된 진리에 대한 신념이 일상화되지 않고서는 지식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없고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그 지식인은 사이비&위선자가 되고 만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짊어진다는 뜻이며 인간은 인형이나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신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녹은 그 쇠를 먹는다

-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두루 받아들이가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 우리 마음인데 이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자신이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지며 이 말은 평범하면서도 틀림없는 진리인 것이다.

남을 미워하며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며 하루 하루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 인생 자체가 얼룩지고 말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인 관계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은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고마워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인데 이 말은 일체유심조 라는 뜻이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는 말은 그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서로 증오를 해야 한단 말인가...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나그네들일 뿐인데...

 

침묵의 의미

 - 내면이 헐벗고 있다는 증거는 우리들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씨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꾸만 거칠고 천박하고 야비해져 가는 현상을 통해 볼 수 있다.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이 말은 불경에 있는 말인데 일상의 우리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써만 어떤 사물을 인식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체는 침묵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데에 있다. 즉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허심탄회한 그 마음에서 큰 광명이 발해진다는 말이다.

침묵의 의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당당하고 참 된 말을 하기 위해서이지, 비겁한 침묵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에도 거리낄 게 없는 사람만이 당당한 말을 할 수 있다. 당당한 말이 흩어진 인간을 결합시키고 밝은 통로를 뚫을 수 있다.

 

아름다움

- 말씨는 곧 그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 말씨에 의해서 인품을 닦아갈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주고받는 말은 우리들의 인격 형성에 꽤 큰 몫을 차지한다. 아름다움이란 겉치레가 아니며 상품 가치도 아닌 것이다.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보이기 전에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다. 꽃에서 향기가 저절로 번져 나오듯이...

아름다움은 슬기로움과 서로 이어져야 한다. 슬기로움은 우연하게 얻어지는게 아니라 순수한 집중을 통해 자기 안에 지닌 빛이 발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이웃이 환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는 그런 존재..소녀라는 말은 아름답고 슬기로운 본질을 가꾸는 인생의 앳된 시절을 뜻한다.

 

나의 애송시

 - 홀로 있다는 것은 순수한 내가 있는 것, 자유는 홀로 있음을 뜻한다.

글  허브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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