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케르케츠 자화상
189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앙드레 케르테츠는 1985년 삶을 마감하기까지 70여 년의 오랜 시간동안 헝가리-파리-뉴욕 등을 오가며 활동한 사진작가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명으로 손꼽힙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자신의 작업원칙에 충실했던 사진작가
헝가리 (1912-1925)
유년시절 부다페스트의 농촌에서 자라 평화롭고 서정적인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품었던 앙드레 케르테츠. 헝가리 시기 작품 속에는 그의 주변 인물들을 찍은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잠자는 소년 부다페스트
1912년 케르테츠가 처음 구입한 카메라로 찍은 '첫' 작품이라고 알려진 <잠자는 소년>입니다.
누구에게 사진을 배운 것이 아니라 독학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그는 한 가게에서 자고 있는 소년을 카메라 속에 담았는데요, 요즘 흔히 말하는 스냅샷 같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촬영한 뒤 실제 가로사진인 원본을 사진의 구도를 생각해 세로사진으로 편집했고,
임의로 설정하지 않은 순간을 포착하면서 사진 속에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평가되면서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예뇌, 시민공원 숲에서, 부다페스트 1913
남동생 예뇌는 케르테츠의 사진작가 인생에 최고의 서포터 역할을 해준 인물입니다.
형의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면서 사진 속 모델이 되어주기도 하고, 1914년 케르테츠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을 때 형이 계속 사진작업을 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보내주기도 하였습니다.
부드러운 손길 헝가리 1915
전선으로서의 강행군, 폴란드 1915
괴르츠 1915
위 사진들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전쟁 기간 속 사진이라 해서 영웅적이고 극적인 장면들이 담긴 사진들이 아닌, 군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케르테츠는 당시 유행이었던 '회화주의' 사진 시조와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진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보츠카이 광장 부다페스트 1914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14년 촬영한 야경사진에서는 빛을 받고 있는 건물의 앞과 뒤에 명확히 드러난 흑백과 피사체를 통해 보여지는 그림자를 촬영했습니다.
그는 야경사진의 대가로 알려져있는 브라사이의 스승격이라고 알려져 있을만큼, 다양한 사진작업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수영하는사람 에스테르곰 헝가리 1917
수영 두나하라스티 헝가리1919
1917년에 촬영한 <수영하는 사람> 은 빛과 물을 이용한 왜곡효과를 하이앵글 구도로 촬영하였고, 1919년에는 수영을 하는 예뇌의 모습을 촬영한 뒤 네거티브 필름을 뒤집어 인화하는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작업방식들을 시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은 케르테츠가 이미 해놓은 것들이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엘리자벳과 나 부다페스트 1921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증권 거래소에서 만나 평생을 함께한 케르테츠의 뮤즈 엘리자벳은 그의 사진작업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진 속에 다른 연인들의 모습은 많이 담지 않았는데 엘리자벳과 자신의 모습을 담은 <엘리자벳과 나>시리즈는 헝가리시기를 시작으로 파리-뉴욕시기는 물론 엘리자벳이 죽고 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 작업했습니다.
파리 (1925-1936)
1925년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많은 예술가들이 체류했던 파리로 떠납니다.
미술, 연극인들의 아뜰리에가 모여 있던 몽파르나스에 자리를 잡고 만 레이, 몬드리안, 샤갈, 다다 등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선두작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예술적 역량을 펼치게 됩니다.
몬드리안 안경과 파이프 1926
파리 시기에 케르테츠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초상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초상사진이라고 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촬영한 사진을 떠올리겠지만 케르테츠는 그 사람의 부분을 보여주고 전체를 상상하게 하도록 하는 환유적 표현방식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는 헝가리의 화가 라요스 티하니의 <파이프가 있는 정물화 1923>에서 영감을 받아 몬드리안의 작업실에서 촬영한 초상사진입니다. 흰 테이블과 대비되는 사진상단 좌우의 삼각형과 동그란 안경과 재떨이가 사진의 안정감과 리듬감을 동시에 주면서 피사체를 통해 몬드리안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몬드리안의 집에서 파리 1926
폴 아르마의 손 1928
동물시장 생미셸 선창 파리 1927 ~ 8
또한 잡지 [뷔 VU}를 비롯한 여러 신문과 잡지에 사진작품을 출판하고 여러 주요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요.
단순한 저널리즘 사진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감성을 마음껏 표현하며 사진 속에 담아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때문에 70여년의 사진인생에서 아주 짧았던 파리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했다고 합니다.
케드로세 파리 1926
은방울꽃 장수 샹젤리제 1928
그러던 중, 1930년(뷔 VU) 잡지의 새로운 편집장 카를로림 초상사진 작업을 맡게 됩니다.어떻게하면 임펙트있는 초상사진을 촬영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집장을 한 놀이동산 앞의 뒤틀린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촬영했고 놀라운 왜곡 이미지를 만들게 됩니다,그 뒤로 한 층 더 깊어진 (왜곡시리즈)를 연구하고 제작했습니다
왜곡 시리즈
일그러진 얼굴, 뒤틀린 신체, 길게 늘어진 팔 다리 등 여성의 누드를 촬영하면서 기이함과 기괴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여성신체의 신비로움을 깊게 탐닉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초현실주의적 세계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동시대에 활동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인 만 레이, 브라사이 등도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현실을 변형, 왜곡시키는 실험적 이미지들을 제작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동료였던 케르테츠 역시 초현실주의 작가 중 한명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특정 예술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늘 "나는 그냥 아마추어 사진가이고 싶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엘리자벳과 나 1931
앞서 말씀드린대로 파리에서도 부인과 자신의 모습을 담은 <엘리자벳과 나>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사진 속에서 케르테츠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엘리자벳의 반쪽 얼굴과 그녀의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이 보입니다.
자신과 엘리자벳의 모습을 촬영한 뒤 여러번 크로핑하여 만든 이미지인데요,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게 하는 케르테츠의 사진 특징이 잘 드러나면서 엘리자벳과 자신은 늘 함께 있다는 의미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크로핑 하기전 (엘리자벳과 나)
뉴욕 (1936-1985)
1936년 사진 대행사 키스톤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파리를 떠나 뉴욕에 정착하게 됩니다.
처음 [보그 Vogue],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등 유명 잡지사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파리에서와 달리 뉴욕에서 그의 사진은 대중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라이프 Life]지의 편집장은 케르테츠의 사진은 너무 말이 많다고 표현하면서 그의 사진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는 한동안 힘들고 우울한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길잃은 구름 뉴욕 1937
우울한 튤립 뉴욕 1939
그의 우울했던 감정은 사진작업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1937년 작품 <길 잃은 구름> 속 구름은 작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뉴욕의 높은 빌딩에 곧 부딪힐 것 같은 아슬아슬한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1939년 작품 <우울한 튤립> 역시 뉴욕 초기 외롭고 힘들었던 케르테츠의 심정이 느껴지는 작품인데요,
팔과 환풍기 뉴욕 1937
소 멸 1955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서, 엘리자벳이 생계에 뛰어들었고 케르테츠 역시 인테리어 사진을 찍는 상업적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작업관과 맞지 않았기에 오랜시간 지속되진 않았습니다.
그는 뉴욕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황폐한 벽돌 담, 그림자, 철근 구조물 등을 촬영하여 콜라주 작업을 하게 되는데 1955년 <소멸> 사진이 그 대표적인 사진입니다. <소멸> 또한 아슬아슬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케르테츠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부서진 벤치 뉴욕1962
토마스 제퍼슨 유티카 1963
1952년, [인피니티 infinity] 잡지에 케르테츠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서 마침내 그의 예술성이 높이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이 전시를 계기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회전이 이어집니다.
깨진원판 파리 1929
2차대전으로 인해 찿으러 갈 수 없었던 그의 원판 필름상자도 파리에서 찿아오게 되는데, 그중에 손상된 필름 원판들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케르테츠는 손상된 그의 필름 원판들도 작품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그데로 인화하면서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했습니다. 되찿은 헝가리 - 파리 시기의 작품사진까지 인정을 받으면서 뉴욕 후기에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뉴욕 1955
무제 1963
뉴욕 현대미술관 MOMA 1960
뉴욕 후기에는 흑백사진뿐만 아니라 컬러사진도 등장합니다. 케르테츠는 카메라 장비에 굉장한 얼리어답터로, 새로운 장비가 나오면 늘 바로 구입하면서 사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항상 주머니 속에 카메라와 렌즈를 넣고 다녔고 길을 걷다가 자연스러운 빛과 구도로 포착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또 원하는 사진이 나올때 까지 매일매일 그 장소에 나가
" 한 장면 속의 요소들이 내 눈을 만족시키는 구도로 정렬될때까지 다양한 앵글로 주제를 관촬하며 나는 그저 걸어 다닌다." -앙드레 케르테츠-
파리의 케르테츠 파리 1982 10분 39초
사진을 찍기 위해 수없이 걷던 시절이 지나고, 몸이 쇠약해지자 케르테츠는 주로 집에서 사진작업을 이어나갑니다.
1977년, 사랑하는 엘리자벳이 세상을 떠났지만 사진으로 늘 그녀를 추억했습니다
집에서는 발코니에 피사체를 놓고 촬영하길 즐겼는데, 어느 날 한 가게에서 여성의 실루엣 모양의 유리조각을 발견하고선 엘리자벳을 떠올리게 됩니다. 곧바로 그 유리조각을 구입해 촬영하고, 후에 비슷한 모양을 하나 더 구입한 뒤 마지막 <엘리자벳과 나>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초상 영화 11분 37초 < 엘리자벳과 나 >
이 시기에 케르테츠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촬영을 즐겨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이 담긴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습니다.
무제 1981
1985년 9월 28일, 앙드레 케르테츠는 뉴욕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10만 점의 원판 필름과 1만 5천 점의 컬러 슬라이드 소장본을 프랑스문화부에 기증했습니다.
미국시민권자였으며 뉴욕에서 가장 오랜 시간 거주했지만 역시나 그에게는 파리에서의 시기가 가장 행복했었나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