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늘아가 미안하다

며늘아가 미안하다 / 황정혜

 

시집오기 전날 할머니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건 남편이란다.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기에 남편을 공경하고 잘 대해 주어야 한다. 고집이 세고 성질이 있어 보이니 네가 많이 힘들겠구나. 너는 나와 함께 살았으니 예의 바르게 행동하여라. 동작이 느려서 소나 돼지 같으면 팔기라도 할 건데 사람이라 걱정이 많구나." 시댁어른들께 친정 식구들을 절대 욕먹이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시부모님과 함께 초등학교 1,3,5, 중1의 시동생들이 있었는데 남편은 군 복무 중이었다. 시부모님은 남편도 없는데 와서 고생한다고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었다. 된장찌개 하나에도 맛있다 하면 시동생들도 덩달아 맛있다고 먹어 주었다. 막걸리빵, 수제비 등 간식용으로 20kg 밀가루 한 포대가 금방 바닥이 났다. 잘 먹어 주고 잘 따르니 시동생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기다란 여섯 개의 빨랫줄에는 오전 오후로 빨래가 널렸고 하루 종일 쓸고 닦고 해도 행복했다. 생신상을 차려 드리고 감사편지를 읽어 드리니 칭찬이 자자했다. 휴가 온 남편도 아버지, 엄마 생신상까지 신경 써 주어서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일 년 반 정도 남편이 집에 없었던 이 시간을 지금도 시동생들과 함께 천국의 시대라고 부르며 추억을 얘기한다..

 

군 제대 후 남편은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어린 동생들은 절대로 고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장남의 사명감이 크다는 것은 연애시절부터 느꼈다. 남편은 일수를 쓰면서 어렵게 생활하는 부모님과 함께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치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독불장군이었다. 어린 동생들도 많이 혼내고 내게도 언성을 높였다. 부부싸움 한 다음 날은 시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무릎 꿇고 빌었다. “우리 아들이 성질이 못돼서 그러니 너가 이해해라. 성질만 빼면 버릴게 하나 없는 애인데 우리가 미안하다.” 내게 오히려 더 미안해했다.

 

시부모님은 일찍 가게를 그만두셨다. 업종이 바뀌며 내가 장사에 합류했다. 시동생들을 가르치고 비바람 막아 줄 집 한 칸씩 장만해 결혼시켰다. 내게는 큰 짐을 지우게 해서 미안해 하셨다. 같이 살자고 애원하는 아들의 말을 외면하고 좀 편히 살겠다고 분가하셨다. 그래도 며느리에게 너무 미안해 수시로 드나들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워낙 좋으신 분들이라 동서들도 모두 건강과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쓴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연세가 되어서 가끔씩 우리 집에 오셔서 회복하시면 다시 댁으로 돌아가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살자고 울면서 매달릴 때 나가지 말 걸. 하면서 후회하셨다. 남편에게 우리가 모시고 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기에는 60인 우리 인생이 너무나 불쌍해서 안 되겠단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부모님 분가에 우리 자식들 키우고 이제야 우리 인생을 즐기려고 하는데 부모님께 얽매여 버리면 힘들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가 오고 자식들이 수시로 들락달락하고 두 분이 건강하게 사시길 자식들이 최선을 다한다. 아버님은 어머님의 주치의가 되어서 당뇨 관리 30년 동안 합병증 없이 잘 관리해 주니 이만큼이라도 건강하게 사시는 게 우리의 큰 복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선한 눈빛. "신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대신 부모님을 보냈다." 는 글을 읽었다..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 며느리도 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부모님의 깊은 정을 깨닫는다.